졸지에 남편을 잃은 24세 청상과부가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슬하에 아들이 없는 신세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감행하기 직전 5살난 딸과 시부모에게 각각 남긴 조선시대 한글 유서 2편이 발견됐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임치균 교수는 유씨부인이라고만 알려진 조선시대 여인이 16세에 1년 연상인 남편에게 시집와서 딸만 하나 낳고 24세에 남편을 잃은 후 자살을 결심하고 자기 딸 팽아와 시부모에게 남긴 한글 유서 2편을 발굴해 국학출판사인 태학사가 발간하는 한문학 전문 계간학술지인 '문헌과 해석' 봄호에 발표했다.딸 앞으로 쓴 유씨부인 유서는 전체 14쪽이며 각쪽마다 16자 내외, 9행씩의 한글이 빼곡이 적혀있고 시부모에게 올린 유서는 전체 18쪽이다.
유서 내용을 추리면 유씨부인은 남편이 22세때 정해년 별시에 급제했으나 3년 뒤 폐병으로 요절하자 심한 심적 고통에 시달리다 급기야 자살까지 결심했다.
이 유서 2편에서 유씨부인은 시부모가 서울에 간 틈을 타 자살을 결심하면서 여자의 도리와 부모에 대한 효,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 팽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을 곳곳에서 남기고 있다.
더욱이 8순이 넘은 친정 아버지가 남편을 잃고 상심이 큰 딸의 자살기미를 미리 알아채고 두번이나 노구를 이끌고 손수 찾아와 살기를 깨우치자 고민이 더욱 컸음을 유서에서 밝히고 있다.
친정부모까지 살기를 타일렀음에도 그녀가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아들이 없는 신세 때문이었다.
유씨부인은 남편을 "하늘이나 태산같이" 바라볼 정도로 남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유서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으며 "남편의 옥골신체와 청고한 뜻이 날로 새로워서" 견딜 수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
또한 딸에게 주는 유서 마지막 부분에는 "너와 같은 아들 하나를 두지 못하여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하고 있음을 볼 때 아들없이 딸 하나만 둔 채 청상과부가 된 자신의 신세도 자살동기가 됐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까닭으로 자살을 결심한 유씨부인이지만 혼자 남게될 5살난 딸 팽아가 불쌍해 견딜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련코 잔인한 내 팽아야, 네 부모가 다 없으니 어디를 향하며 누구를 의지할꼬. 어찌 팔자를 못 타 이리 되며 너 하나를 저리 혈혈(孑孑)케'외롭게' 하는고. 각골서러워라. 내 차마 어찌 눈을 감고 돌아가며 못할 일인줄 모르랴만 네 선친(아버지)일을 생각하매 가슴이 울고 흉격(胸隔)이 막히니 차마 내 어찌 이리 세상살 뜻이 있으리오"
이 유서는 작성 시기나 유씨부인이라고만 알려진 작자를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부모님 만경양주로 총(은총)을 받고"라고 유서에 나타난 것으로 미뤄 유씨부인의 아버지는 지금의 전북 김제군에 속했던 만경 현감과 양주 부사를 지낸 인물임을 알 수 있다고 임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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