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1리 고래골 양지마을. 지난 92년 임하댐 완공 후 수위가 내려갈 때만 물빠진 모습을 드러내는 곳. 품은 사연만큼이나 긴 주소를 꼬불꼬불 돌아가면 그곳엔 400년된 '큰 기와집' 한채가 아직도 용케 남아 있다. 400년된 기왓장보다 더 무겁게 집을 짓누르고 있는 진흙 더께. 안방도 대문도 다 물에 내주고 큰 기와집은 그렇게 앙상하게 서 있다.
지난 10일 오후7시. 이제는 사람의 손에 철거될 운명에 놓인 큰 기와집 마당으로 장르가 다른 5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머리 풀고 서 있는 버드나무에 만장을 걸고 조명을 밝혀 무대가 완성됐다. 괴짜 피아니스트 임동창씨가 기획한 '큰 기와집 성주풀이'. 국악인 신영희.전인삼, 가수 이동원, 바리톤 조시민, 행위예술가 강만홍, 서양화가 최준걸, 첼리스트 이종현… 을씨년스런 하늘 위로 둥둥둥 북이 울리고 어떤 이는 바이올린을 켜고 또 다른 이는 살풀이를 추면서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난장(亂場)'이 시작됐다.
"담담합니다" 새로 지은 집도 아닌, 곧 철거될 집에서 성주풀이를 꾸민 장본인 임동창씨는 공연 내내 섭섭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길을 잘못 들어 처음 이 흉물스런 집과 마주쳤을 때 난생 처음으로 한없는 황홀감과 슬픔을 맛봤습니다.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이 공간에서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창조하고 공감하는 무대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좫
이틀째 퍼부운 비로 공연장은 온통 발목이 푹푹 빠지는 뻘밭. 무명천으로 만든 화폭이 비에 젖든 말든 범주스님(달마선원 원장)은 계속 선화를 그려나갔고 우산을 받쳐든 600~700여명의 구경꾼들도 아랑곳없이 자리를 지켰다. 40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는 사라질 큰기와집과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면서, 성주풀이는 밤새도록 길게 계속됐다.
〈申靑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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