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다보면 손자가 늙어죽는 꼴을 본다'는 시정의 속언이 있다.
별의 별 못볼 꼴을 보다보니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욕(辱)일듯 싶은 느낌이 들 수도 있으리라. 고관집 절도사건이 갈수록 일파만파(一波萬波)가 되고 있다.
웬만한 사건이래도 월요일 쯤이면 신문이 전날 하루를 쉰 탓에 보도가 숙지막해질 법도 한데 시쳇말로 '재미는 지금부터'. 그 재미의 첫째는, 고관집 절도범 김강용(金江龍)씨가 구속된 날이 3월18일, 정부여당이 3·30 재·보선을 의식, '철통보안을 해왔다'는 의혹이다.
실로 이 도둑을 무소불급(無所不及)의 난적(亂賊)으로 부른들 최소한 정치권에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임기 1년을 앞두고 겨우 원내에 진입한 당대의 모 실세는 지금쯤 얼마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까.
절도범 김씨가 연출하고 있는 재미의 둘째는 현직장관 2명과 김대통령의 사설경호원이었던 사람의 집을 털었다는 주장이다.
어느 장관집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금고속 외교행랑속에 1㎏짜리 금괴 12개가 나왔다니 이 역시 말도 많은 12만달러의 12로 묘하게 떨어진다.
현직 장관이 귀금속도매상을 겸하고 있다면 모르되 코묻은 애기들 돌반지조차 지난해 IMF 구국의 대열에 선 사실을 떠올리면 부도덕의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지금쯤 피해당사자들이 그야말로 '도둑놈 개꾸짖듯' 중얼거리는 소리로 서민들 귀에는 이명(耳鳴)현상이 날 지경. 한마디로 도둑하나가 검찰·경찰 등 이 나라의 수사기관들을 손바닥 위에 얹어놓고 천하대사를 경륜하는 모습이다.
검찰의 구형량을 봐가면서 추가폭로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것 아닌가. 이 도둑의 작심 여하에 따라서는 고위공직자들의 청렴도가 더 드러날 것이고 그때쯤이면 감사원 등 공직자 사정기관 무용론이 안 나온다는 보장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속담에도 '도둑놈은 한죄(罪), 잃은 놈은 열죄(罪)'라고 했다. 물건 간수 잘못한 죄에서부터 남을 의심한 죄, 나중의 망신죄까지. 시거든 떫지나 말지.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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