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국의 역대 여왕들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나라 영국. 역대 영국 국왕 중에는 걸출한 여왕도 많았다. '여왕폐하'(HER MAJESTY THE QUEEN)라는 공식 존칭이 붙었던 이들 여왕들은 대영제국의 수장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나 요절하거나 국민들의 원성을 산 여왕도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영국역대 여왕은 16세기 튜더왕조의 '메리 1세'에서부터 이번에 방한하는 윈저왕조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모두 6명. '메리 튜더'라고 불리는 메리 1세(1516-1558)가 최초의 여왕이다.

헨리 8세와 제1왕비 캐서린의 딸로 이복동생인 에드워드 6세의 뒤를 이어 1553년 즉위한 그는 1558년까지 재위에 있었다.

열렬한 구교도였던 그는 즉위 이듬해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와 결혼한 후 부왕의 치적인 종교개혁을 부인하고 구교부활에 주력하면서 많은 신교도들을 처형, 후세에 '피의 메리'로 불렸다.

두번째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헨리 8세와 제2왕비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1000일의 앤'으로 유명한 모후 앤이 죽은후 궁정의 복잡한 세력다툼의 와중에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하고 런던탑에 유폐되는 등 고통스런 소녀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메리 1세에 이어 25세에 즉위한후 45년간의 오랜 치세동안 국민들로부터 '훌륭한 여왕 베스'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영국의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로 황금기를 구가해 셰익스피어, 스펜서, 베이컨 등 유명한 학자·문인들을 배출하는 등 영국 절대주의 전성기를 이뤘다.

엘리자베스 1세 사후 86년이 지나 스튜어트왕조의 메리 2세(1662~1694)가 여왕에 오른다.

제임스 2세의 장녀인 그는 1677년 오렌지공 윌리엄(후일 윌리엄 3세)와 결혼해 네덜란드로 건너갔으나 1688년 명예혁명이 발발한후 영국의회 초청으로 부군과 함께 귀국한다.

'권리장전'을 수락하고 윌리엄과 공동으로 왕위에 오른 그는 겸손하고 공평한 인품과 식견으로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으나 천연두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자식없이 서거했다.

언니 메리 2세와 형부 윌리엄 3세에 이어 1702년 등극한 앤여왕(1665~1714)은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합병해 그레이트 브리튼왕국을 건설한 여왕이다.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그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확립하고 내각책임제를 발전시켰다.

하노버왕조의 마지막 영국 군주인 빅토리아여왕(1819~1901)은 백부인 윌리엄 4세가 별세하자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하노버왕국에서는 여자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노버왕조가 성립된 이후 계속되어 오던 영국과 하노버의 동일군주 관계가 끝나고 그는 영국왕위만을 계승했다.

독일출신으로 고결한 인품과 풍부한 교양을 가졌던 앨버트공과 1840년 결혼, 그의 외조에 힘입어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소위 '빅토리아시대'로 불리는 그의 64년간의 치세동안 영국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로 발돋움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는 윈저왕조 조지 6세의 장녀로 지난 52년 부왕의 급서로 왕위에 올랐다.

53년 웨스트민스터교회에서 거행된 대관식에서 그는 영국·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이자 자치령 각국의 왕이며, 구 대영제국에 속했던 독립국들의 결합체인 '코먼웰스(Common Wealth)'의 수장으로서 최초로 대관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빅토리아여왕에 이어 두번째로 재위기간이 긴 여왕인 그는 47년 에딘버러공 필립과 결혼해 찰스왕세자와 앤공주, 앤드류왕자, 에드워드왕자등 3남 1녀를 두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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