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이화 세상읽기-김강용과 홍길동

절도범 김강용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도둑행각을 공개했다.

그는 장관, 도지사, 경찰서장 등 이른바 권력층에 속한 사람들의 집을 교묘한 방법으로 털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자신도 놀랄 정도로 현금과 금덩이,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보관방법에 또 놀랐다고 한다. 장롱과 서랍을 열자 현금과 귀중품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신기할 것이 없었다. 냉장고에 보관한 김치통에 현금봉투가 가득 들어 있었고, 꽃병에 현금을 넣어 두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앞으로 수사결과를 지켜 보아야 하겠으나 고위층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부정하거나 일부만을 시인하고 있고, 김강용의 말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더욱이 수사당국은 피해자의 신고가 없었다는 따위 구실을 붙여 이 부분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짓이었다. 한번 따져 보자. 필자는 냉장고나 꽃병에 현금을 보관하는 방법이 신기했다.

그래서 오래 검사로 봉직했던 친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이 부정스런 뇌물의 신종 보관방법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 사람아, 신종은 무슨, 글쟁이가 별걸 다 알려고 하네"라고 대꾸했다.

이런 정도의 보관방법은 예전부터 써오던 것이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하, 그렇겠지. 지금 당사자와 수사당국은 온갖 변명을 늘어 놓고 있고 정부 여당은 엄정 수사를 할 터이니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성명서를 내기도 하고, 야당은 관련자들이 공직자여서인지 연일 불공정 수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선다.

누가 뭐라든, 무슨 변명을 늘어놓든, 국민정서는 벌써 은폐 축소수사라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야당에서 모처럼 국민들이 공감하는 문제를 제대로 짚은 것 같다.

도둑의 역사는 인류가 정착사회를 이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사회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래서 고대의 법은 형벌로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형법인, 기자(箕子)가 실시했다는 8조의 금법(禁法)도 첫째가 도둑질한 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나온다.

삼국이 법령국가를 표방한 뒤에도 도둑은 국가문제, 사회문제로 떠올라 통치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불일치는 도둑발생의 일차적 원인임을 불변의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3대 도둑으로 꼽는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은 이런 배경에서 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도둑을 단순한 절도, 양반과 부호의 재물만 터는 준의적(準義賊), 관가의 재물을 털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적으로 구분해 왔다. 위의 3대 도둑을 의적으로 꼽았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의 재물을 결코 털지 않았고, 턴 재물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런 탓으로 이들은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의적들은 자신의 이해를 위해 도둑질한 것이 아니었고, 불평등한 빈부격차를 타파하려 도둑행각을 벌였기에 저항운동의 한 형태로 보려한 것이다.

김강용이 자신의 도둑행각을 두고 사회비리를 고발하는 의식을 보이자, 의적 흉내를 내서 대도라는 별명을 얻은 조세형씨는 흥분했다.

하룻 저녁에 유흥비로 수천만원을 쓰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줄 모르는 자가 어찌 대도의 이름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럴 듯한 것 같으나 사실 문제는 다른데 있을 것이다.

진짜 도둑은 권력을 빌어 부정을 저질러 치부한 자들이다. 이들은 대도도 아니요, 의적도 아니다. 김강용의 말대로라면 그 해당 장관, 도지사, 경찰서장들은 이 사회를 썩게 만드는 권력형 도둑들이다.

이번에 정부와 수사당국은 미봉으로 얼버무리려 하지 말고 시원하게 한번 진짜 실상을 파헤쳐 생활에 찌든 국민들의 가슴을 풀어주기 바란다. 그러면 미적거리는 개혁조치들도 저절로 풀릴 것이요, 공직자의 부정도 적발해 내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것이다. 개혁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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