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맞벌이를 하는 정영희(40.여)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고1, 중2인 두 아들의 공부 때문이다. 특히 큰 아이는 고교생이 되면 학교에서 맡아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중학교 때보다 더 노는 것 같아 벌써 대학 보낼 일이 걱정이다. 고심 끝에 학원 두과목을 듣게 했지만 아무래도 직장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바뀐 교육제도를 바라보는 고교 1학년 학부모들은 근심이 가득하다. 인성과 적성을 중시함으로써 과열입시를 방지한다기에 적잖이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3월초만 해도 오후 5시쯤 집에 돌아와 빈둥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그러려니 했는데 날이 갈수록 불안감이 커진다. 윤모(44.여)씨는 "밝을 때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괜히 걱정"이라며 "친구들과 어울리다 혹시 삐뚤어질까 싶어 학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전형이 대폭 확대됐다고 하지만 여기에 기대를 거는 고1 학부모는 학생보다 더 찾기 힘들다. 지금껏 공부만 해왔는데 갑작스레 특기가 발굴될 리 없고 소질이 보인다 해도 매달 수백만원씩 들여 제대로 가르쳐볼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공부를 시키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덜 시키니 학원에라도 의존해야 한다. 1주일에 두세 과목은 들어야 오후 시간을 채울 수 있으므로 학원비도 만만찮다. 사교육비를 절감한다는 새 제도가 되레 사교육비를 더 들게 만드는 것이다. 학교 관계자들은 벌써 오후 7, 8시까지만이라도 학교에서 붙잡아 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새로 시작되는 수행평가에 대해서도 염려는 마찬가지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평가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공정하게 이뤄질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한 학부모는 "선생님이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만 질문한다는 아이의 불평을 듣고 조바심이 났다"며 "교사들의 주관적인 평가에 반발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같은 이유로 수행평가가 또다시 치맛바람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늘어나고 복잡해진 과제물도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던져주고 있다. 과제 때문에 아이들이 도서관, 박물관을 찾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 가끔씩 골치아픈 문제를 들고 도움을 요청해 백과사전이나 신문을 함께 뒤적이는 것도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워드를 쳐 출력해오는 아이도 있다" "친구들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프린트 해오는데…"라며 말끝을 흐릴 때 답답함이 생기는 것이다. ㄱ고 김모교사는 "과제물을 낼 때 집안형편 때문에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하지만 결과는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바뀐 입시제도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한 여고의 경우 학부모의 절반 이상이 "공정하게 평가해달라"고 교사들에게 당부했다. 교사들에게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로 과거 성적, 가정형편, 성격, 심지어 학부모의 학교 기여도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학부모는 "입시제도가 바뀔 때 가장 괴로운 건 학생도, 교사도 아닌 학부모"라며 "이번 제도변화로 학생들의 공부부담은 줄어들지 몰라도 부모들의 걱정은 몇배 더 늘었다"고 적고 있었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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