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지도계층의 변신술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폐단의 하나는 평생을 한결같이 살다가 물러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일게다. 상당한 식자층 인사들중에도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처신이 조석(朝夕)으로 변하는 것을 얼마든지 보게 된다.

김영삼 전대통령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자마자 야당의원을 무차별 영입, 야당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또 소위 '역사바로세우기'를 하면서 검찰권을 무소불위로 발동, 문민독재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러던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지 1년 남짓에 DJ의 야당의원 영입을 욕하고 DJ를 독재자로 몰아붙이며 한다하는 '야당 투사'로 변신하고 있으니 세상사란 이래도 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여기서 DJ를 두둔하고자 이 말을 하는게 아니라 하도 많은 지도계층 인사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 얼굴을 바꾸며 살아가는 변신술이 놀라워서 해보는 소리다.

5공때 문공부 차관과 통일원장관을 지낸 허문도(許文道)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허씨는 82년 당시 언론인 강제 해직과 언론사 통폐합을 주도했던 인물.

그런 허씨가 케이블TV인 불교텔레비전(BTN)사장으로 선임되자 언론개혁 시민연대는 성명을 발표,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언론사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꼬집고 물러나지 않으면 BTN 시청거부운동 등을 벌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3공, 5공때의 많은 인사들이 정계와 재계에 복귀, 목청을 높이고 있는판에 허씨가 BTN사장이 된다는게 대수냐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은 까맣게 잊고 정반대의 주장을 거리낌없이 해대는 사람이 많아질때 정의로운 사회는 영원히 멀어진다는 측면에서 허씨의 선임은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지식인이 아니라 파문의 위협속에서나마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의연했다던 갈릴레오 같은 지성인이 더욱 기대되기에 하는 말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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