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는 우리의 옛 살림집. 겉보기는 비슷해도 뭐가 달라도 조금씩 다르다는 말일게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의아하게 생각될 부분이다. 절제속에서도 개성있는 공간구조를 이룬 반가(班家)에서부터 간략한 평민들의 초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옛 사람들의 집짓기는 그만큼 다양하다. 일정한 원칙속에서의 변형된 미의식이랄까.
옛 우리의 대표적인 살림집인 초가. 초가는 어떻게 지어졌고 어떤 미의식을 담고 있을까? 초가는 근대화의 물결로 급속히 사라져간 우리의 옛 것중 하나다. 불과 60년대까지만해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초가들이 이제는 도무지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다.
그나마 옛 살림집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전남 승주군 낙안면 낙안읍성(사적 제302호). 전통적인 민가들이 소복이 모여 앉아 있다. 성 남쪽으로 드넓은 들이 펼쳐지고, 북쪽에는 급하고 험한 산들이 에워싸듯 버티고 있어 집과 자연이 마치 그림같은 한풍경이다.
조선초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태조 6년(1397년) 김빈길(金嬪吉)이 쌓은 토성을 인조때 낙안군수 임경업이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다시 축조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성문과 성벽, 문루 등 많은 부분이 파손되고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
부랴부랴 사적으로 지정하고 복원을 서두른 것은 불과 10여년전의 일. 민속마을로 지정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낙안읍성에는 많은 민가들이 남아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사대부 살림집과 달리 거의 평민들의 살림집인 초가다. 현재 성 안팎의 초가는 모두 90여호. 민속자료로 지정된 100~200년된 초가 고옥도 아홉채나 남아 있다.
읍성 성벽위에서 내려다 보면 올망졸망 처마를 서로 기대고 서 있는 초가의 부드러운 지붕선은 무척 낭만적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당수 초가들이 어른 키 보다 낮은 지붕탓에 허리를 꺾고 드나들어야 하고, 어떻게 이런 공간에서 사람이 살았을까 할 정도로 좁고 실내공간의 움직임이 불편해 보인다. 옛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곤궁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증거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선입견은 실체를 알지 못할때 불쑥 나타나는 생각의 파편이라는 것을 초가에서 확인하게 된다.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지어진 낙안의 옛 살림집들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자. 조금씩 규모가 다를뿐 대부분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一자형 홑집 형태라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영남대 김일진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이들 홑집은 규모에 따라 3개의 유형으로 나눠진다. 가장 기본적인 부엌과 방 2칸구성으로 방 앞에 툇마루를 낸 경우다. 더러 방이나 부엌곁에 헛간이나 창고를 따로 달아낸 경우도 보이지만 규모로 볼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살았던 살림집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낙안읍성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태는 부엌과 큰방, 작은방이 一자로 나란한 3칸 구성의 초가. 방앞에 툇마루를 낸 전퇴집 형태로 작은 방 옆으로 툇기둥을 세우고 처마를 늘여서 헛간처럼 쓰는 집도 있고 아예 토벽을 쳐 한칸을 고방으로 꾸몄다.
세번째 유형은 소위 '남부지방 민가'라 부르는 형태로 부엌과 큰방, 마루방, 작은방의 4칸 一자 전퇴집. 방과 쌍여닫이 살문이 달린 마루방앞에 툇마루를 냈다. 이 마을에서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살던 살림집이다.
낙안의 초가와 대구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에 있는 조길방가옥(중요민속자료 제200호)과 비교해보자. 지은지 200여년이 넘은 이 초가는 남부형에 속하는 평면구성이다.
2칸마루의 왼쪽에 큰방과 부엌을, 오른쪽에 작은방을 배치시킨 一자형 초가다. 경사가 급한 산중턱에 세운 탓에 안채가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낙안의 평지 초가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다.
축대아래 낮은 마당에는 좌우로 아래채와 사랑채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부속건물처럼 마주보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채를 돋보이게 한 것도 다르다.
이같은 부분들은 초가의 형태적인 측면일뿐 초가의 정체를 밝혀주는 근본적인 열쇠는 아닐성 싶다. 그러면 초가의 본질은 무엇일까. 초가는 집 구조가 간편하고 짓는데 경제적 부담이 없어 가장 보편적인 옛 집이다.
대부분의 초가들이 실내공간은 좁은데 반해 농사일에 편리한 타작 마당과 흙담이나 돌담으로 경계를 두면서도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전통적인 우리네 집짓기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초가에 담긴 아름다움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겠다. 볏짚 속에는 어느정도 공간이 있어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며, 겨울에는 집안의 온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줘 보온에도 좋다.
비록 수명은 짧지만 비교적 매끄러운 탓에 빗물이 잘 흘러내린다. 또 이엉을 엮어 매년 갈아 끼워주면 새집같은 모습이 된다. 지붕을 낮게 만들어 누구든지 손쉽게 지붕을 이을 수 있다. 지붕이 왜 이토록 낮을까 하는 의문이 곧 풀렸다.
이번 취재에서 낙안읍성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초가 고옥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보수공사를 하면서 생활의 편리함을 좇아가는 바람에 크게 변형된 사실이 확인됐다.
원래보다 굵고 높은 기둥으로 바꿔 처마를 높인 탓에 낮은 지붕의 소담한 초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낙안의 초가에는 양동마을의 반가에 딸린 외거노비들의 살림집인 '가랍집'에서 느껴지던 단절감이 없어 좋았다.
비록 관아가 마을 윗자리에 버티고 있지만 고만고만한 형편의 평민들의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간 점에서 더욱 도타운 정을 느낀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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