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6)부기 나이트

잘리고, 덧입혀지고, 가려지고…. 각종 전시회의 '손대지 마시오'란 경고문이 한없이 부러운 우리의 영상문화. 손을 대려면 제대로 대든지.

얼마전 개봉된 '부기 나이트'. 미국 포르노산업의 인물군상을 통해 70년대 미국 사회를 해부한 화제작. 마지막 부분, '길어서 슬픈 짐승'('물건'의 사이즈가 33cm) 덕 디글러가 재기를 다짐하며 자신의 성기를 꺼내 보이는 장면. 숨을 죽이는 관객들. 그러나 갑자기 긴 빨간 막대기가 바이러스처럼 튀어나와 '물건'을 가리자, 아쉬운 한숨과 함께 곳곳에서 키득대는 웃음이 터진다.

제법 엄숙한 장면에 터진 뜬금없는 웃음들. '변강쇠'처럼 해학적인 에로영화로 '변질'된다.

또 하나의 '악몽'. 지난 95년 개봉된 거장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패션쇼'. 패션업계의 부패와 부조리를 담담하게 고발한 이 영화의 피날레는 마지막 장면의 패션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패션"이란 상징성을 위해 팔등신 패션모델들이 전라로 무대를 걸어나온다.

그러나 국내상영에선 이때도 핑크빛 하트무늬가 둥둥 떠다니면서 모델들의 중요부분을 가렸다. 왜 하필 저급잡지의 전유물인 하트무늬이고, 그것도 핑크빛일까. 비웃음과 조롱, 박장대소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거장 알트만의 대담한 표현력은 코믹한 해프닝이 되고 만다. 가려야 될 장면이라면 미세한 모자이크로 하면 안될까. 일본에서는 그렇게라도 해서 영화의 진지함을 최대한 살렸다.

가위질뿐 아니라 가려야 될 것도 사려깊게 못 가린, 한국영상산업의 미숙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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