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70년대 후반이후 일본 젊은이들에게 지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문학평론가다. 69년 '나쓰메 소세키론'으로 '군상'(群像)지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60~70년대 '일본의 사르트르'로 불린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에 이어 일본 지성의 한 축을 이룬 인물이다.
일본의 대형서점에 '가라타니 고진 코너'가 따로 마련될 정도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은유로서의 건축' 등 많은 저서를 펴냈다. 그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 펴냄)이 처음 국내 번역출간됐다. 74년 '군상'지에 발표해 78년 가메이 가쓰이치로(龜井勝一郞)상을 수상한 이 책은 초판이 나온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저서중 가장 많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100쪽 분량의 이 저술에 왜 일본 지식인들은 눈을 떼지 못할까? 결론은 새로운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글이 쓰여질 무렵인 70년대초 일본은 신좌익이 붕괴하고 '마르크스는 쓸모없다'고 하던 시기였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느냐" "비평가가 경제학이나 철학을 알까"라는 주변의 멸시는 당시 분위기를 짐작케하는데 충분하다.
하지만 아무도 마르크스를 거들떠보지 않으려던 시기에 가라타니는 새로운 시각으로 마르크스를 해석, 일본 지식인사회에 지적 충격을 준 것이다. 이런 충격은 80년대로 이어져 당시 일본의 대학생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였다. 89년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이 책은 또 다시 지식인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만 이미 가라타니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 이해를 좌우하던 기존의 지배적인 중심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중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본론'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의 텍스트속에서 마르크스를 읽었다. 그가 시도한 방법은 구조주의적인 언어분석. 이 방법을 응용한 치밀한 독해를 통해 '이제까지 사유하지 않은 것'을 읽었다.
번역판에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외에도 '계급에 대하여' '문학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문예비평인 '나쓰메 소세키론'과 보론 2편이 실려 있다. 마르크스 해석을 바탕으로 일본 근대문학을 이야기하고 사상을 논한 것이다. 이 비평들은 가라타니 고진의 사유체계가 바로 마르크스 독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 책의 교훈은 '마르크스를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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