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중 가장 바쁜 모내기철. 새참 때가 되면 논두렁에 둘러앉아 막걸리사발을 주고받던 농부들의 모습이 이젠 소주, 맥주를 마시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취재진은 꼬박 이틀을 돌아다닌 후에야 영양군 청기면 들판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농부들을 발견했다. 도로가에 쭈그리고 앉아 곰탕을 얻어먹고 집에서 담근 걸쭉한 농주도 몇잔 얻어 마셨다. 몇순배가 오고가자 금방 화기애애해졌고 자연스레 구수한 얘기가 오고갔다. 이런게 사는 맛인가. 한 노인은 "농부는 막걸리를 마셔야지. 막걸리 한 두 사발을 들이키고 나면 배를 채워주고 일하는데 힘을 주지"라며 막걸리 예찬론을 폈다.
사실 예전엔 술은 특별한 때에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음료였다. 옛말에도 호미질 나갈 때에는 술단지를 잊지 말라고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사발, 좀 쉬고 싶을 때도 한사발, 새참 먹을 때도 한사발…. 힘겨운 농사일에 흥과 힘을 돋우는 활력소로 '마구 걸러낸 술'이라는 뜻의 막걸리가 애용됐다.
일제시대에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집집마다 담그던 토속주는 밀주라는 이름으로 금기시됐고, 이를 대신해 막걸리 만드는 술도가가 등장했다. 이 막걸리마저 70년대 이후 맥주, 양주 등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막걸리 정서를 몽땅 안았던 술도가가 퇴출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30, 40대 이상이라면 어린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가던 기억이며 술도가에 얽힌 추억이 유난히 많을 것이다. 돌아오면서 입을 주전자에 대고 몇모금 훔쳐(?) 먹고는 더 마실수 없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일, "요즘 갈수록 술을 적게 주네"라는 어머니 말에 찔끔했던 기억도 빠뜨릴수 없다.
술도가 옆을 지날때면 항상 맡던 구수함과 퀴퀴함이 묘하게 섞여 있던 냄새, 더운날 나무 막걸리통 몇개를 자전거에 싣고 땀을 뻘뻘 흘리던 배달아저씨,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고 '커'하며 소매로 입을 쓱 닦던 이웃집 아저씨··.
세월과 함께 흐릿하게 남아있는 흐뭇한 기억들. 그 추억들의 상당부분은 술도가로 인해 이루어진 탓일까. 그 곳이 조금씩 그리워진다. 그 술도가는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경북 봉화읍에 있는 봉화탁주합동양조장. "요즘 막걸리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루 서너말 밖에 팔리지 않아 노는게 태반입니다" 사람좋아 보이는 변재연(64)사장도 막걸리 얘기는 아예 언급하기 싫은듯 했다. "10여년전만 해도 군내에 행사가 있으면 술도가 주인은 우선순위로 초대를 받았는데 언제부턴가 오라는 소리도 없어요"
술도가 주인은 동네유지라는 등식은 깨어진지 오래였고, 술도가는 이미 분주하게 돌아가는 공장이 아니었다. 70년대엔 봉화군에 20여개의 술도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4개만 남아있다. 그것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형국이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낡은 건물, 좁고 어두컴컴한 공장내부, 수십년은 족히 됐을 듯한 물통…. 예전의 영화를 곱씹는 존재로 전락해 있는 듯 했다.
봉화군 봉성면에서 동양양조장을 경영하는 이원준(70)씨. "예전엔 하루 70, 80말은 팔았죠. 선거나 장날때면 하루 500말도 더 팔았습니다. 하루에 한두말 팔아서는 용돈도 안돼요" 이씨는 6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때도 있었지만 이젠 혼자서 작업을 한다. 이씨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큰 단지에 누룩과 찐 밀가루를 섞어 숙성시키는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하고 있었다. 이씨는 "막걸리 맛은 손끝이 좌우한다"면서 "막걸리만큼 술쟁이(?)의 정성이 스며있는 술도 드물 것"이라는 말을 잊지않았다.
영주시 부석면에서 60년간 부석양조장을 운영한 최병규(80)씨는 "올해초 문을 닫았다"며 슬픈 표정이었고, 안동시 풍산읍 풍산탁주의 김윤식(62)씨는 "막걸리 배달로는 먹고살지 못해 농사일도 겸한다"고 했다. 안동 인근의 양조장들은 인삼막걸리를 개발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구미, 경산 등의 술도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친에게 양조장을 물려받은 영양군 청기면 임증호(47)씨는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은 케이스. 그는 예천 임씨 가문에 전해오던 초화주라는 토속주개발에 성공, 7월부터 시판에 들어간다. "시골에는 술의 주소비층인 젊은 사람이 없어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1년동안 자료수집을 하고 2억5천만원의 정부지원자금을 빌렸죠. 술맛이 뛰어나 히트를 칠것 같습니다"
대구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대구탁주는 그래도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70년대에 지역의 54개 양조장이 합병해 만든 대구탁주는 예전부터 뛰어난 술맛과 자동화된 생산공정으로 이름높았다. 지배인 김승대(58)씨는 "대구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막걸리를 많이 마시는 편"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김씨는 "대구사람들의 기질이 막걸리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논리를 폈다. 텁텁한 맛에다 취하고 깨는 시간이 은근하고도 긴 막걸리의 속성이 대구사람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입맛과 취향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추억은 세월과 함께 묻혀버리기 마련. 그런데도 술도가에 대한 아쉬움이 유독 더해지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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