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예식장 풍경

'살 날이 많이 남은 사람에겐 결혼청첩장이 많이 날아 오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겐 부고장이 많이 날아 온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청첩장과 부고장이 선전비라처럼 나돌고 있다.

이런 일화- 내 친구가 겪은 실화-가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결혼식과 장례식이 몇 곳이나 겹쳐, 마라톤하듯 숨가쁘게 행선지(?)를 누비고 다닌것 까지는 좋았지만, 갈 길이 바쁘다보니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부의금을 내야할 곳엔 축의금봉투를, 축의금을 내야할 곳엔 그만 부의금봉투를 바꿔 내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될줄이야.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두 곳에서 약속이나 한듯 전화가 걸려 왔다. "사람이 죽어서 슬픔에 잠겨 있는데 결혼을 축하한다니? 그런 식으로 사람을 농락하면 천벌받는다구"잇따라 걸려온 또 하나의 전화도 노발대발이었다. "이제 막 인생을 새출발하려는 청춘남녀에게 축하대신 조의를 표한다구?"

청첩장 남발이 빚어낸 코미디 같은 실화가 아닐 수 없다. 청첩장을 받고 가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솔직히 말해서 알량한 체면때문에 외면해 버릴 수도 없지만, 혹여 나중 길에서 만나면 야속해 하는 얼굴이 삼삼 어른거리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예식장을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같은 경험은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곗돈처럼 부어왔던 축의금을 두둑하게 한번 만져 보리라는 심사도 깔려 있긴 하겠지만, 그러나 해도 너무 하다할 만큼 청첩장이 광고지처럼 남발되고 있는것 만은 사실이다. 어떤 것은 참으로 친절(?)하게도 '축의금은 바로 이곳으로 보내주십사'하며 은행 계좌번호까지 적어 보낸 청첩장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추세로 세태가 변할 경우 언젠가는 '아무개 선생님의 사망 예정일은…'하는 따위의 조의금 선납제도 생겨나지 않을는지 염려스럽다.

〈동서병원·동서한방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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