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과 공간-(21)너와집·굴피집

거친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집'의 출발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토록 경계해야 했던 자연에서부터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찾아냈다. 나무와 돌, 흙, 볏짚 등 집짓기에 필수적인 재료들은 자연의 산물. 현대 건축과 비교해 볼때 옛 사람들의 건축에서는 이같은 천연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건축의 개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연재료를 그냥 가져다 쓰기보다는 적절하게 가공하고 기후 등 주변환경에 맞게 변형해낸 것이다. 공간에서 건축으로의 진화. 바로 인간의 습관과 미의식이 일궈낸 몫이다.

피난처에서 출발한 집짓기가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잡기까지 촉매역할을 한 것은 바로 자연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강원도나 울릉도 등 산간·도서지방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너와집·굴피집 등 사라져가는 옛 집에서 이같은 전통과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 첩첩이 사방을 막아선 산으로 하늘마저 손바닥만하게 보인다. 깎아지른 척박한 산비탈에도 사람은 살았다. 계곡 이곳저곳에 너와집을 짓고 화전을 일구며 고된 삶을 살았다.

불과 20년전만해도 10여채의 너와집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겨우 세 채만 남아 옛스러운 분위기로 외지인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초가와 마찬가지로 너와집은 자연친화적인 건축 유형이다.

너와집은 산간지방에서는 흔하디 흔한 적송이나 전나무를 대략 폭 20~40cm, 길이 50~70cm로 쪼갠 널판으로 만든 집이다. 수목이 울창한 산골에서 볏짚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나무이기 때문이다.

지붕은 너와를 처마에서 위로 올라가며 서로 포개어 이었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무거운 돌이나 너시래(긴 통나무)를 얹어 두었다. 너와가 촘촘히 얹혀진 너와집은 초가와는 또 다른 독특한 운치가 배어 있다.

내부공간도 농촌지방의 초가와 많이 다르다. 대개 온돌방에만 진흙을 두껍게 발라 천장을 만들었다. 봉당(안방과 건넌방 사이 마루가 될 자리를 흙바닥으로 그대로 둔 곳)이나 부엌·마루 등에는 너와가 그대로 보이는 삿갓천장으로 굴뚝이나 까치구멍으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가 지붕의 너와 틈새로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

집 안팎의 벽들도 온돌방만 제외하고 모두 널판재를 사용했고 통나무의 속통을 파내 굴뚝을 만들었다. 특히 산간의 혹독한 추위때문에 내부구조와 살림살이도 다르다.

김치를 보관한 나무통이나 싸리독인 '채독', 사냥용 창인 '주루막', 눈위에 신는 신발인 '살피'(설피) 등 생활용구가 이색적이다. 불씨를 모아두는 '화티'와 '코쿨'(고콜)로 불리는 조명시설도 농촌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지와 봉당 사잇벽에 설치된 코쿨은 관솔을 놓고 불을 지펴 정지와 봉당, 마루까지 환하게 밝혔다.

울릉도의 너와집은 강원도의 너와집과는 달리 형태와 크기가 독특하고 바람과 눈이 많은 섬지방의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너와지붕에 사용된 나무는 고로쇠나무, 해송 등. 일정한 크기로 쪼개어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아래에서부터 포개어 얹었으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많은 돌을 얹어 두었다. 특히 비가 새거나 겨울철 폭설의 무게로 내려앉는 일이 없도록 튼튼하게 지었다.

나리분지에 남아 있는 너와집은 통나무를 정(井)자 모양으로 서로 엇갈리게 층층히 얹은후 그 틈을 흙으로 메우고 두툼하게 바른 귀틀집 형태. 다른 전통민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데기를 둘러쳐 놓은 것이 특이할 점이다. 벽에서 약 130cm가량 간격을 두고 억새풀로 이엉을 엮은 우데기로 사방을 둘러쳐 겨울철 찬바람이 방벽에 직접 와닿는 것을 막았고, 대신 여름은 서늘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편 '굴피집'은 참나무나 도토리나무 겉껍질을 벗겨 건조시킨후 지붕을 이은 우리의 전통적인 민가 건축유형이다. 주로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화전민들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1920~30년대 들어 벌목금지 등으로 너와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이를 대체한 것이다.

굴피집의 내부구조는 너와집과 거의 유사하고 마루중심형 겹집의 공간구성으로 되어 있다. 영남대 건축학과 김일진교수는 "건조한 날씨에는 굴피가 말라 오므라들어 굴피 틈사이로 하늘이 보일 정도지만 비가 오면 수분을 머금은 굴피가 늘어나면서 틈새가 막혀 비가 새지 않는다"고 굴피지붕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삼척시 도계읍 대이리에는 얼마전까지만해도 20여호가 남아 있었으나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중 한 채를 환선굴 입구에 원형대로 이전복원, 중요민속자료 223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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