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이화 세상읽기-장관 사모님과 밍크 코트

요즈음 장관부인들의 고급 의상 '스캔들'로 세상이 시끄럽다. 장관부인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이려던 재벌부인이 밍크 코트를 보냈다느니 옷값의 대불을 요구받았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 놓아 장관 부인들의 행태를 알려 주었다.

장관부인들은 보내온 밍크 코트를 돌려주었고 옷값을 대불해 달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펄펄 뛰었다. 이 '스캔들'이 확산되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여러모로 조신(操身)을 당부했다. 또 한쪽에서는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정확한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 서민들로서는 어느 말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어 어리벙벙할 뿐이다.

사실 이런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었다. 하나 남김없이 진상을 밝히겠다던 병역비리도 몇달에 걸쳐 조사했으나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그리고 장성들 자제의 연루사실은 한 건도 밝히지 못했다. 장성들 아들은 사관학교 입학에 특혜를 받는다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았으니 일반 병역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을까?

이런 조사를 아무도 믿지 않는 풍토를 탓할 것이 아니다. 대전 검사 비리문제도 결국은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검사들이 그 정도로 절제된 행동을 했던가? 우리가 뻔히 아는 관행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사결과를 보면 또 한번 속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스캔들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한참 지난 뒤에 다시 기억에 떠올리고 그때도 어물쩡 넘어갔지 라고 되뇌일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방식과 당면한 정치적 손실을 계산하는 미봉책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 부정부패의 척결을 아무리 내걸어도 뜻을 이룰 수 없고 개혁의 완성을 쉬지 않고 외쳐도 하나도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종속관계에 놓여 있어 왔다. 그래서 남편의 위세를 빌려 정치권력을 통한 부정을 저지르거나 남편은 아내를 통해 부정의 통로로 이용하려 들었던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예전 영조임금은 벼슬아치 부인들이 너무 사치스런 생활을 하자 연속 금령을 내려 단속했다. 그는 부인들의 비행이 드러나면 먼저 그 지아비에게 벌을 주었다. 머리통보다 더 큰 값비싼 가발을 쓰는 유행이 일자 이를 전면으로 금지했다. 구한말, 한창 외래품이 들어올 적에 순국한 민영환의 아내는 외국제 팔찌와 진주로 치장하고 파라솔을 받쳐 쓰고 외국공사 부인들과 놀이를 뻔질나게 다녔다. 남편의 명예에 먹칠을 했던 것이다. 이 두 시기 민중들은 지탄을 퍼부었고 나라는 국고가 텅텅 비는 지경에 이르러 끝내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위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된다.

일제시대 박흥식이라는 재벌은 금명함을 돌렸다 한다. 법에 걸리지 않고 뇌물을 주는 수법이었다. 해방후에는 흔히 사과상자밑에 현금을 깔거나 골동품과 그림을 선물하는 따위로 뇌물을 전달했다. 어느때 부터인지 돈을 세탁하는 수법으로 전환했다. 시대에 따라 그 수법도 달라졌던 것이다. 오늘날은 물건을 일단 가져 가고 이를 대불하는 수법도 등장한 모양이다.

우리네 장관 '사모님'들은 개혁의 시대와 민주의 시대를 살면서 21세기로 올라서는 전환기에 처해 있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권력이 있는 곳에 유혹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 바란다. 밍크 코트를 입지 않아도, '사모님'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존경받는 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밍크 코트를 입는다고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아니다. 봉사하고 검소한 생활로 국민들의 모범이 되면 밍크 코트를 입은 모습보다 우리는 우러러 보고 존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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