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가족-(5)멀어지는 친·인척

경북대 사회학과 강사 이모씨는 두어달전에 아버지상을 당했다.

그러나 상가에서 음식을 내오고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를 맡을 '젊은' 친척들은 한명도 나서지 않았다.

예순 넘은 고모들이 부엌에 나가려고 할 뿐, 20~30대 사촌·조카들은 '삐끔히' 들여다보기만 했지 팔을 걷어붙이고 구정물에 손담기를 자청하지 않았다. 문상을 오는 친·인척의 범위도 대폭 줄었다.

"삼촌이 돌아가면 당연히 밤을 새며 무사히 '큰 일'을 치르도록 돕던 인간적인 배려, 상호부조를 통한 친·인척간의 호혜(互惠)정신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씨는 사회변동이후 친척의 정서적·지지적 기능이 급속히 떨어지는 현장을 체험한 셈이다.

남성직장인 이형진(35·삼성코닝)씨도 얼마전에 치른 부친의 장례식에서 식사 대접은 병원 식당을 이용하고, 음식 뒷일은 파출부를 써서 해결했다.

"확실히 옛날보다 친·인척 문상객이 적게 오고, 오더라도 금방 돌아가며, 부엌에 들어가는 여자 친척은 대폭 줄어들었다"는 이씨의 말처럼 대부분 가정에서는 마음 졸이며 친척의 손을 빌리느니 차라리 돈을 주고 남을 부리는게 낫다고 믿는다.

계명대 가정관리학과 박혜인교수는 "도시화·산업화에 따라 친족집단을 중심으로 한 개인의 지위와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전통을 지키려는 의식이 약화되면서 가정의례의 사회화·상업화·획일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친척들이 상가 뒷바라지, 제사 뒷바라지, 부모 역할을 대행해주리라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혈연의식의 지속으로 친척들이 모여서 성묘는 하고 있지만 이미 농협의 벌초 대행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제상도 주문배달 시대가 도래됐다.

예전에는 아버지·어머니가 돌아가면 어린 조카의 부양책임이 삼촌이나 고모·이모에게 승계되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거의 '남의 일'처럼 여겨진다.

99년 5월말 현재 대구시내 소년소녀가장은 238가구 337명. 이 가운데 할머니하고 같이 살거나 삼촌네의 단칸방을 세들어사는 이들도 있지만 20% 정도는 어린이끼리 혼자 산다.

"아직 소년소녀가장을 조부모나 친인척들이 데리고 사는 비율이 높긴 하지만 도시화·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친·인척들의 가치관은 상당히 달라지고 부양책임도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고 대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한선희과장은 들려준다.

서울대 옥선화·한경혜, 계명대 박혜인, 덕성여대 신화용교수팀이 가족/친족 구조의 해체와 재구성을 실태조사한 결과, 도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적 관계는 아직도 친척이지만 비친족과의 관계도 증가하는 변화상은 이런 현상을 대변해준다.

즉 도시 개인이 유지하는 친족범위는 부모·형제·형제의 배우자를 중심으로 국한됐고,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숫자는 3명 미만에 그쳤다. 네번째, 다섯번째 친한 사람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세번째 가까운 사람으로는 친족보다 비친족을 꼽는 이들이 49대 51로 역전됐다.

기혼남녀가 부모형제와 왕래하는 비율은 80%선에 이르지만, 삼촌이상의 친척과 왕래한다는 비율은 30~40%로 뚝 떨어져 정보화 시대 신가족들의 친인척 관계망은 약화일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21세기 신가족은 부계중심의 직계가족으로부터 양가의 부모-자녀관계를 포용하는 부부중심가족이 한결 소극적으로 변한 친족생활의 중심에 서게 될 것 같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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