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마녀사냥이라니..

팔순을 바라보는 김대중대통령의 정치력은 아직 건재하고 역시 노련하다.사지(死地)의 김태정법무장관을 오히려 격려하며 그 자리에 앉혀 놨다. 김장관에다 김중권비서실장 교체론까지 거론하던 공동여당도 일거에 잠재워 놓았다. 청와대로 불려갔던 김종필총리를 비롯한 공동여당 수뇌부도 수굿해졌다.

검찰발표도 예상했던 수순 그대로였다. 일시에 정국을 수세에서 공세로 반전시켜 버렸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대서특필했던 언론보도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였고 청와대측이 따로 조사했다는 여론조사에선 65%가 '검찰수사결과에 따라 김법무장관 퇴진결정'에 지지도를 보였다는게 김대통령의 설명이었다.

◈애매한 여론조사

문제는 김대통령의 시국인식 단초가 된 그 여론조사의 설문이 좀 묘했다. 김장관의 퇴진문제를 '밝혀질 사건진상에따라 향후 결정해야 되느냐' '아니면 사건진상과 관계없이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하느냐'였다는 것이다.

만약 이 설문을 '현 사태의 수습을 위해 김장관이 퇴진해야 된다고 보느냐' '아니면 유임시켜야 된다고 보느냐'로 바꿨으면 어찌 됐을까. 앞의 결과와 차이를 보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대목에서 언뜻 생각나는게 TV사극드라마에서 비친 세조의 독백이다. 사육신들의 처형을 명해 놓고 세조가 '내게 공신(功臣)은 있으나 충신(忠臣)은 없다'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그리고 세조는 '내게 성삼문같은 충신이 단 한사람만 있어도 여한이 없겠다'면서 그를 못내 아쉬워하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새삼스럽다.

김종서, 황보인 등 세종조의 충신들을 제거하고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이른바 계유정난의 공신들이 세조의 눈에는 공을 내세워 충신인양 그들의 영달을 탐하는 인물들로 비친 것이다.

수가 틀리고 왕위(王威)가 약해지면 그들은 또다른 군주를 모색할, '힘의 논리'에 따라 언제든 색깔을 달리할 수도 있음을 세조는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드라마지만 그게 역사요 정치현실인건 왕조시대나 지금이나 외양만 다를뿐 속성은 다를바 없다. 언젠가 김대통령도 청와대로 초청한 유림들에게 현대적 개념의 충은 바로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단심(丹心)이라 했던가.

◈불행한 언론관

그러한 사고의 김대통령이 이번 시국해법에서 보여준 언론관(言論觀)이 마녀사냥식의 여론몰이로 봤다면 그건 실로 불행스러운 일이다. IMF체제로 대량실직, 감봉, 도산, 굶주림, 죽음 등등의 고통속에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도 아랑곳없이 고관들 부인들의 옷사치행각을 개탄한게 마녀사냥으로 비춰진다면 정말 나라장래가 걱정스러운 편견이다.

백보양보해서 항차 검찰총장의 부인이면 한벌에 수백만원씩하는 최고급 옷가게 출입을 한번쯤 재고했어야 고통분담 차원의 처신이 아니었을까. 백화점 세일이면 어떻고 남대문시장은 못갈 곳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백만원짜리 옷을 입고 기도원에 가서 도대체 뭘 어떻게 봉사하겠다는 건지도 생각해 봤어야 했다. 봉사받는 그들의 눈에는 귀부인의 걸음이 오히려 부담스럽고 '시늉'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수십만원짜리 점심상에 천만원대의 코트를 번갈아가며 입고 벗고 하는게 소일거리라면 비판받아 마땅한 것 아닌가. 문제는 특정답을 유도하는 묘한 설문의 여론조사를 한 참모들에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도대체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건지 참으로 한심하다.

오죽했으면 집권여당 일각에서 민심이반을 그렇게 걱정했을까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도 지역구 민심이나 여론에 항상 귀를 열어놓고 있기때문에 실상이 그러하니 묵묵부답이요 전전긍긍한게 아닐까. 다음 총선을 걱정하고 지역구 여론동향에 노심초사한 나머지 장관퇴진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럼 검찰수사결과가 나온후에도 54개 시민단체가 일제히 궐기, 김법무의 사퇴와 재수사를 외치는 것도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란 말인가. 그 장관에 그 부인이라는 얘기다.

아니면 그 부인을 제가(齊家)못한 그 장관이란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비자금수사를 유보했거나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전령사였다는 그 공(功)에 너무 얽매여서 민심읽기에 굴절되는 일이 있다면 그 연(緣)은 이쯤에서 끊는게 대다수 국민을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단임을 고언(苦言)한다.

국민들이 몰라서 침묵하고 있는게 아니다. 다만 발등의 불인 국가경제 재건에 노심초사하는 노구의 열정에 말을 삼키고 있을 뿐이다. 그 침묵을 휘하의 참모들이 하찮은 무지의 소치로 본다면 그건 정말 '마녀사냥 사고'의 오해라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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