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지점 아닌 심점

우리나라 민속놀이 가운데 '땅따먹기(地占)'라는 것이 있다. 먼저 땅바닥에 네모 꼴로 금을 그어 놓고 뼘으로 반원을 그려 자기 집을 정한다. 둥글납작한 돌이나 사금파리를 다듬어 만든 말(馬)을 자기 집 안에 놓고 손가락으로 세번 튕겨 돌이 지나갔던 선 안을 자기 땅으로 만들고 더 넓은 땅을 차지한 사람이 이기게 된다.비록 코흘리개의 놀이지만 여기에는 선인(先人)들의 땅에 대한 친숙함과 더 넓은 토지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더 넓은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바로 풍요로운 삶과 직결되는 것이었고 땅을 넓힘으로써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특히 여기엔 오늘날 우리들이 곱씹어 볼 만한 지혜와 교훈이 담겨져 있다. 어떤 부정과 반칙도 있을 수 없는 페어 플레이 정신, 게임이 끝나면 승복하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는 대인의 풍모가 바로 그것이다. 돌을 너무 세게 튕겨 자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금 밖으로 나가면 공격권을 상대방에게 넘겨줘야 하므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도 깨우치고 있다.

16대 총선이 10개월여 앞으로 다가 왔다. 여야 각당이 서서히 '땅따먹기'채비에 나서고 있다.

며칠 전 포항에서는 한나라당이 이회창총재를 비롯 5천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를 가졌다. 현 정부의 실정을 규탄하는 국정평가대회였다. 그런데 왜 이총재의 고향도 선거구도 아닌 이 곳인가. 자신들의 땅(텃밭)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집권당인 국민회의도 땅(기반)넓히기에 분주하다. 동진정책이라는 기치 아래 높은 분들의 나들이가 뻔질나고 내로라 하는 지역 유력인사 상당수를 후원회 등 갖가지 형태로 '금'안에 넣었다.

지난 총선 때 녹색 바람을 일으켰던 공동여당 자민련도 앗긴 땅 되찾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각 당이 이 땅을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며 차지하려는 꼴이 달갑지 만은 않다. 어쩌다 정치권의 '먹이감'이 되었나 하는 자괴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구든 발을 붙이게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당은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마구잡이식 '땅따먹기'는 용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땅을 차지하려거든 먼저 거름부터 뿌려라. 당장의 수확만 노려 지기(地氣)를 떨어뜨리는 화학비료가 아니라 땅을 기름지게 할, 잘 익은 퇴비를 말이다.

우리들 스스로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지난 몇 차례의 총선에서 과연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했는가. 총선뿐 아니다. 대선과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남이가'에 혹해 득어망전(得魚忘筌)한 지도자를 선택하기도 했고 기대 이하의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기도 했다. 한때 "잘 못 찍은 손가락을 잘라버리자"라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도, 요즘 나라가 이 꼴이 된 것도 옥석을 가리지 못한 '내탓'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정치권을 지켜봐야 한다. '땅따먹기'만 노리는 정치꾼이 아니라 '마음 따먹기(心占)'를 하는 그런 정치인, 그런 정치가를 가려 낼 수 있는 혜안을 기르자. 또다시 '단지(斷指)'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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