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우리는 왜 이리 불행한 민족인가

새벽에 운동삼아 집 근처 산엘 갔더니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어제 서해안에서 일어난 남북한 해군 함정간의 교전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러다가 전쟁이 터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표정들이었고, 그중 한 젊은이는 걸핏하면 뒤통수를 때리는 북한의 태도에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남한 사람들 뒤통수가 무슨 동네북이라도 되느냐면서 더이상 얻어맞아 깨지기 전에 모두 무쇠뒤통수로 바구어 달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흥분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는 노인이 한 분 계셨다. 약간 찌푸린 시선은 점점 푸른 빛을 더해가는 6월의 물오른 나무들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강파르고 작은 체구에는 왜 이리 세상사는 일이 고통스럽고 종잡을 수 없느냐는 푸념과 한탄이 가득 배어 있는 듯 느껴졌다. 어쩌면 그 노인은 49년전 6월의 그 지옥같던 전쟁의 끔찍한 악몽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좀 자조적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참 불행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북이 분단된 지구상에 달랑 하나 남은 희귀한 민족이라는 사실 외에도, 오랜 세월 냉전구조 속에 감금되었던 민족 문제가 풀릴 듯 상황이 호전될 만하면 난데없이 악재(惡材)가 나타나서 우리 모두의 기대와 희망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리는 그 악순환의 불행이 특히 그렇다. 북한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공지된 사항이다. 걸핏하면 '찬물'을 끼얹는 그들의 일방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적절한 현실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번 북한의 태도에서 우리가 가장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한쪽으론 무력을 행사하여 팽팽한 긴장국면을 조성하고 다른 한쪽에선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금강산 관광객들의 호주머니에서 외화를 뺏는 그 이중적 기행(奇行)이다. 폭력과 자본을 동일선상에 놓고 철저히 이익을 탐하려는 그들의 비정상적인 생존방식이 무엇보다 우리를 분노케 한다.

온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켰던 어제의 서해 교전이 앞으로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론에선 북한의 속셈이 무엇이고 앞으로 또 어떤 이익을 노려서 어떤 식의 도발을 해올지 모른다는 다양한 예상과 분석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속셈을 정확히 파헤쳐서 거기에 맞는 정확한 대응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울 듯싶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민족의 평화와 화해라는 본래의 목표를 향한 고통스러운 항해를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남북 양쪽의 감정이 격화된 지금 우리가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어떤 정치적 판단이나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이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포용도 좋고 햇빛도 좋지만 그것은 북한 당국자가 아닌 굶주린 북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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