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내 중학교 교감인 ㅇ씨의 딸은 내년이면 나이가 서른이 되는데도 부모 슬하에서 계속 공부하고 있는 '늙은' 청년이다.
지역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온 뒤 영어학원·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다가 여의치 않자 지난해 전문대 유아교육과에 진학,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 딸은 대학에 입학한 이래 10여년이 넘도록 '학생'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니며 '마구 늘어난' 청년기를 누리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생각을 않고 있다.
영남대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ㄱ씨는 올해 31세의 미혼여성.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년간 지내다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학비는 물론 자가용 운영비까지 몽땅 부모님한테 타 쓴다. 벌써 성년으로서 사회적인 몫을 감당해야 할 나이를 넘어섰지만 자신이나 부모, 이웃까지 모두 공부하는 처지라 '유예 도장'을 찍어주고 있다.
현재 대구시내에서 석·박사 과정에 다니는 남학생 들의 경우 대부분 서른을 훌떡 넘겼거나 근접한 '노(老)'청년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다른 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진학한 경우는 백중백발 이립(而立)을 넘어섰다.
서른 전후인 딸과 아들을 모두 유학 보낸 50대 중반의 한 주부는 "공부를 한다는데 어떻게 뒤를 대주지 않을 수 있느냐.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노후준비금은 별로 없다"며 중산층 부모들의 자녀 양육부담·교육 뒷바라지 기간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공부해야 출세하고, 공부는 거룩한 것"이라는 '공부 환상론' 내지 '공부 과대 평가론'이 사회의 큰 흐름(big stream)을 형성하면서 전문대학에서 학사편입, 대구에서 서울편입, 외국 유학이 급증, 십수년씩 캠퍼스에 몸담는 '늙은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늘어난 청년기가 허용되는 계층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중산층 이상·고학력 가정들. 때로는 정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 잘된다는 전문대학으로 역류하거나 학원등에 등록하여 공부를 거듭하면서 무한정 늘어난 청년기를 보내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결혼은 선택'이라는 경향마저 농후, 적령기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대학졸업-취업-결혼로 이어지던 가족주기 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경북대 생활과학대 최보가교수는 "외국에서도 청년기가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이지만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 청년들과는 달리 일찍 독립적인 생활을 택한다"고 말한다.
영국 청년들의 경우는 실업수당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18세가 넘으면 부모곁을 떠나서 독립한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청년기의 데드라인인 25세(청소년 육성법상 청소년기는 25세까지)를 훌떡 넘기고도 부모로부터 심리적,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 부모의 미혼자녀 양육기간과 경제적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통 농경사회의 가족주기에는 없던 청년기라는 개념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도시화·핵가족화와 같은 사회변동이 수반된 산업사회가 도래되면서 자리를 잡았다. 즉 산업사회와 함께 의무교육·고등교육이 정착되면서 라이프 사이클에서 소위 '청년기'라는 개념이 추가됐던 것.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사회가 도래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으면 사회 지도층에 진입할 수 없다는 의식이 자리잡으면서 청년기도 따라서 늘어나 가족주기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교수는 "인성을 무시한 기술위주의 정보화 정책의 오류에다 취업을 인생목표로 여기는 풍조에 전통적인 가족주의 개념이 남아서 다 큰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부모들이 자청 내지 과잉보호하는 현실이 빚어지고 있다"며 어렵더라도 청년들은 경제적·심리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자아실현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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