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입논술-5차문제-문화 개방 시대를 맞은 우리의 자세는

다음 두 지문은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글이다. (1)에서 말하고 있는 '눈 뜬 장님'의 비유와 (2)의 '귀울음'과 '코골기'의 비유가 나타내는 의미를 각각 파악하여 쓰고, 이를 통해 문화 개방 시대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밝히시오.

(1) 본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어찌 문장뿐이리요. 일체 온갖 일들이 모두 그렇지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선생이 나갔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우는 자를 만났더랍니다.

"너는 어찌하여 우느냐?"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제가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지금까지 스무 해나 됩니다. 아침에 나와서 길을 가는데 갑자기 만물이 맑고 분명하게 보이는 지라 기뻐서 돌아가려고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바로 네 집을 찾을 것이다"라 하였다.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걷고서 바로 도착하였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차용이 되어 이것이 망상이 된 것입니다.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걷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2) 글이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저 제목에 임해 붓을 잡기만 하면 문득 옛 말을 생각하고, 의지로 경전의 뜻을 찾아 생각을 꾸며 근엄하게 하여 글자마다 무게를 잡는 자는, 비유하자면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는데 용모를 고쳐서 나가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멀뚱멀뚱 구르지 않고, 옷의 무늬는 닦은 듯 말끔하여 평상의 태도를 잃고 보면 비록 훌륭한 화가라 해도 그 참 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도올( 兀)은 흉악한 짐승인데 조나라 역사책이 이름으로 취하였고, 사람을 몽둥이로 쳐서 묻어 죽이는 자가 극악한 도적임에도 사마천과 반고(班固)는 그들의 역사책에서 이에 대해 서술하였다. 글을 하는 자는 다만 그 참됨을 추구할 뿐이다.

이로 볼진대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지만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있다. 비유하자면 귀울음이나 코골기와 같다.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의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의 아이가 귀를 맞대고 귀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귀울음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고는 것이 개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여, 불을 부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끓는 듯, 빈 수레가 덜거덕거리는 듯 하였다. 들이마실 때에는 물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에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는가?"하는 것이었다.

아아! 자기가 혼자 아는 것은 언제나 남이 알아주지 않아 걱정이고,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은 남이 먼저 앎을 미워한다. 어찌 다만 코와 귀에만 이같은 병통이 있겠는가? 문장 또한 이보다 심함이 있을 뿐이다. 귀울음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니 하물며 그 병 아닌 것임에랴!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 주는 것에 성을 내니, 하물며 그 병임에랴! 내 귀울음을 듣지 않고 내 코골기를 깨닫는다면 작가의 뜻에 거의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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