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협박 당하는 의원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한다. 이말은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뜻이지 말 그 자체를 즐기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이 지난 18일 국회본회의 긴급 현안 질의도중 최순영 신동아그룹회장 부인의 로비내용을 담은 '이형자 리스트'를 거론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아닌 여당 동료의원들로부터 협박전화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의원은 "발언후 국민회의 의원으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욕과 협박을 담은 전화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우리의 정치판이 이런 식으로 나간다는 사실은 여간 해괴한 일이 아니다. 천하에서 정치에 뜻을 둔 사람들이 '해야할 말'을 나라의 모법(母法)인 헌법 45조로부터 보장받고 있는 국회의원을 선망하는 이유는 정치의 구체적인 행위가 상당부분 면책특권의 대상인 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자신이 의정 단상에서 소신 발언을 할 수 있을뿐, 동료의원들의 발언을 폄훼하거나 협박할 권리는 국회법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여야를 떠나 의원 자신들의 입지를 좁히기만 할뿐. 만약 이의원의 발언이 사실에 전혀 기초하지 않은 황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법당국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 따질 일이지 야당의원을 상대로 여당의원이 윽박지를 일은 애초부터 아닌 것이다. 한나라당이 확보한 이른바 '이형자 리스트'란 것이 여권인사 또는 그 부인들 10여명이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이 한점 의혹없는 조사를 지시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로써 이의원의 발언은 외형상 효과를 거둔 셈이다. 정권을 담당한지 1년반도 채 못돼 의혹수준의 테마가 될 것 같지도 않은 여인네들의 옷이 국정의 한복판에 자리잡아 분향을 풍기더니 이젠 당대 대가의 그림까지 한몫하고 있으니 여권으로서도 답답한 노릇임엔 틀림없다. 의혹의 확실한 해소만이 새로운 신뢰의 토양이 된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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