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삼윤씨 기행집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어느 역사의 현장이든 영욕과 성쇠의 발자취는 함께 아로새겨져 있다. 또 도처에 나뒹구는 갖가지 유적에는 무심한 세월의 흔적과 한 시대를 떠받쳐온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적을 찾아간 문명비평가 권삼윤씨의 유럽기행집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효형출판 펴냄)에서 서구문명의 뿌리와 실체를 읽을 수 있다. 켜켜이 쌓인 유럽 문화유산의 퇴적층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고 그것들의 뿌리와 속내를 들여다 본 이 책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부터 몰타의 거석신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영국 스톤헨지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문화유산들에 대한 기록이다. 유럽에 있는 총 236점의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중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유산 30점을 골랐다.

이 책은 단순히 이국적 풍경을 그려내거나 감상문 차원의 유럽기행문이 아니다.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유럽문화유산의 실체를 근저까지 추적해 동양적인 것과의 다름과 조화로움이 무엇인지, 합일점을 찾을 수는 없는지를 고민하고 쓴 글이다. 그 결과 한줄한줄의 글마다 유럽 문화의 정신적 심층과 역사적 배경, 인간의 삶까지도 배어나온다. 여행자는 너무나 눈부신 신전의 하얀 대리석 기둥에서 신화의 그림자를 더듬어내고 그 신화가 유럽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골똘하게 생각하며 유럽의 문화를 읽어내려 간다.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의 사람들의 순박한 얼굴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도 하고, 하늘을 찌를듯 솟은 독일 쾰른 대성당의 첨탑을 우러보며 동서양 종교문화의 특성을 비교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어디가 제일 좋던가요?" 라는 질문에 그때마다 적당히 얼버무리곤 하는 여행자는 눈부신 '두브로브니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평화스러움에 마냥 행복하다. 발칸 특유의 붉은 기와지붕과 그 사이사이로 고개를 길게 내민 교회 종탑, 두터운 석벽의 성채와 무성하게 자란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소나무들. '중세유럽의 보고(寶庫)'이자 '아드리아해의 진주'인 이 도시에서 여행자는 세월속에 깊숙이 감춰진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를 들추어 낸다. 지난 91년 유고내전으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중세 유럽문명과 예술의 상징적 도시다. 당시 프랑스 학술원 장 도르메송 회장이 "유럽선진국들이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포격하나 중지시키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라며 서구 정치 지도자들을 질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유고내전 그 자체보다도 더 비중있게 언론에 다뤄진 도시. 이제 비서구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두브로브니크의 존재. 이곳을 찾는 세상의 모든 여행자들은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고 기억해 낼 것이다. 〈徐琮澈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