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산다고 밝힌 한 할머니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나의 소설 '가리산의 눈먼 벌치기'를 성당에서 사서 읽었는데, 그 주인공의 인생보다 자신의 인생이 더욱 애절할 거라며 이야기를 들어 달라 했다. 그로부터 몇 주뒤의 일요일, 할머니는 직접 대구로 찾아와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애절하다는 표현으로는 오히려 모자란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인생 이야기였다. 이 세상의 불행이란 불행은 모조리 모아 놓은 듯 했다. 두 아들을 사고로 잃고 한 아들은 사업 실패로 빚만 남기고 집을 나가 소식을 끊었다. 평생 동안 이루어 놓은 재산인 작은 한옥집은 경매에 부쳐졌다. 내가 어떤 말을 하여도 위안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어느 영국인에게서 들은 말을 해 드렸다. -아마 내일은 오늘보다야 더 좋아지겠지요-
재작년 여름 한 달 간의 말미로 영국 옥스퍼드에서 연수를 받을 때 무료한 오후 시간을 때우기 위해 도시 외곽의 템즈강으로 가서 보트를 빌려 타곤 했다. 어느 날, 배를 저어가는데 강기슭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고기를 얼마나 잡았느냐 물었고 그는 '아마 내일은…(Maybe tomorrow)'이라고 대답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말 대신 아마 내일은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연수를 마치고 같은 나라 다른 지역에서 연수를 받은 사람이 쓴 연수기를 읽었는데 똑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어서 무척 놀랐다. 비로소 나는 그것이 그쪽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전주의 할머니는 두 시간도 넘는 고해성사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며 떠나갔다. '아마 내일은'이라는 말이 별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말은 희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처지가 비록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마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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