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서 민(民)의 자형(字形)은 초목의 싹이 많이 나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곧 토지에 의지해 사는 많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자니 말 많고 시끄럽기는 이들의 필연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백성의 입막기는 내(川)막기보다 어렵다'고 했겠는가. 그러나 동양에서 치국(治國)을 위한 기본 이념은 군이민위체(君以民爲體.禮記)로 모아진다. 김대중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국민은 하늘이요, 우리가 받들어야 할 대상'으로 언급했다. 최근에 얽히고 설킨 정국 상황을 생각하면 대통령의 이 말은 실로 놀라운 변화로 받아들일 일이다. 부인의 일이긴 하지만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해임하지 않겠다며 끌어안고 있던 김태정(金泰政) 전법무를 보름만에 내려놓은 안사정은 이른바 민성(民聲)이란 여론의 반발을 산 때문. 이제 다시 2만달러의 찬조금 사건으로 손숙(孫淑) 환경부장관을 1개월만에 퇴각(退閣)시킨 이유 역시 여론때문이었지만 전자에게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거부했던 것을 보름을 시차로 '국민의 비판수용'으로 바뀐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인식변화는 연유야 어디에 있든 국민들의 입장에선 '귀를 씻고 들을만한 일'(洗耳恭聽)이다.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또 있다. '창당정신과 야당때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추호도 차질없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것. 이른바 항심(恒心)을 찾겠다는 자기 선언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항상 품고 있어 주위의 상황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떳떳한 마음을 찾겠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87년 6월, 78일 동안의 연금이 해제되면서 '국민의 소리인 자유와 정의와 통일에의 대로가 새로운 민주정부아래서 튼튼히 열릴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고 감격한 적이 있다. 3년반이 지나고 나면 이 정부가 들고 나갈 보따리는 도덕성밖에 없다는 각오를 가질 것을 국민들은 원하는 것이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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