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변창구)-6.25와 햇볕정책

오늘은 바로 49년전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냉전적 국제정치환경에서 감행된 북한의 침략은 남북분단과 갈등구조를 더욱 심화시켰으며, 그 결과 한반도는 세계적인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빙산(the last glacier)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현정부의 햇볕정책은 나름대로 이론적 근거와 현실적 판단하에 추진되면서 금강산관광과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는 등 상당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최근 서해에서 일어난 북한의 도발과 남북간의 교전(交戰)은 우리에게 참담했던 그날의 새벽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지금 동해의 금강산 유람과 서해의 군사적 충돌이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아가 민족통일의 당위적 요청과 국가안보의 현실적 필요 사이에서 야기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양자의 유기적 연계성에 유의하면서 한반도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포용정책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보다 깊은 주의가 요청된다.

우선 무엇보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분단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햇볕정책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인식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민족은 재기 불능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전쟁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는가. 이상주의자들은 대화와 협상을 말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은 힘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대화의 가치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평화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힘, 즉 억지력(deterrence)의 확보이다. 북한의 핵개발의혹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에서 알수 있듯이 그들의 강성대국(强性大國) 노선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힘의 뒷받침이 없다면 북한에 악용될 뿐이며 그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만약 북한이 우리의 햇볕정책을 악용하여 도발을 할 경우에 이를 효과적으로 응징하지 못한다면 햇볕정책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나약한 정책이 되고 만다. 또한 햇볕정책의 추진에 손상을 받지 않기 위하여 북한의 도발을 묵과한다면 분쟁이 기정 사실화되어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당근만 주는 햇볕정책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반드시 채찍을 든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킴으로써 선의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햇볕정책의 성과는 북한의 인식과 대응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솝우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매우 낭만적인 전제하에 햇볕정책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실체에 대한 인식적 오류를 범하게 됨으로써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다. 북한은 우리의 햇볕이 자신의 체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크게 경계하고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 옷을 벗을 정도의 햇볕을 무작정 계속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은 햇볕정책을 그들의 대남정책과 연계하여 역이용하는데 우리가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에는 도와주고 뺨맞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유지에 손상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햇볕정책의 과실을 최대한 따먹으면서도 기존의 대남전략을 고수한다면 남북관계는 결코 우리가 의도하는대로 진전되기 어렵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 즉 서해상의 도발, 북경 고위급회담의 일방적 연기, 금강산 관광객의 억류 등은 햇볕정책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대응전략이 어떠한 것인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결국 이와같은 점들은 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보다 정확한 현실 인식에 토대를 두고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인식을 위해서는 49년전의 쓰라린 경험이 의미있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민족통일을 위한 어떠한 대북정책도 북한의 실체적 모습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효가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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