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립현충원에서는 6·25전쟁때 전사한 고 김용수(당시 26세) 하사의 묘비가 유족들의 오열속에 새로 세워졌다. 그러나 당국의 무관심속에서 잃어버린 군번을 되찾기 위해 50여년간 통분과 한탄의 세월을 보냈던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당시 학생이었던 김용수 하사는 6·25전쟁이 터지자 경산에서 3일간 훈련을 받은뒤 곧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51년 11월25일 경북 ○○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인 권기순(70·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전사한지 5년이나 지난 56년에서야 전사확인서를 발급받았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인 권씨가 59년 이사를 하다 전사확인서를 잃어버린 바람에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생계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뒤 섬유공장 공업원으로 일하던 권씨의 아들 김웅이(50)씨는 지난 70년부터 '아버지 찾기'에 나섰다.
당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국방부, 병무청, 보훈처(당시 원호청) 등 관련기관들은 '서류 불충분', '확인불가'를 내세우며 부친의 전사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서울과 대전을 1, 2차례 이상씩 오가며 30여년을 보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지난해 1월 웅이씨가 대구지방병무청을 방문했을 때 병무청 직원은 웅이씨의 사정을 듣고 대구지방법원 호적계를 일주일간 뒤져 먼지가 켜켜이 쌓인 웅이씨 부친의 전사확인서를 찾아냈다.
웅이씨는 이 전사확인서를 국방부에 통보, 48년만에 아버지 이름의 묘비를 국립묘지에 세울 수 있었다.
한편 웅이씨는 아버지와 이름과 군번이 똑같은 사람이 칠곡에서 살다 51년 11월22일 전사했고 그 유족들이 연금을 받아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이미 0123273 군번으로 연금이 지급돼 왔다는 이유를 들어 웅이씨의 유자격심사를 1년 이상 지연시키면서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경위도 설명해주지 않고 있어 또다시 웅이씨 가족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다.
웅이씨는 "국가기관의 무책임한 행정이 계속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느냐"며 눈물을 삼켰다.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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