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제금융체제 확립을 주장하는 대구라운드 등 국제시민운동의 목소리가 가시적 성과를 낳고 있다. 극빈국 부채탕감운동인 '주빌리2000'과 투기자본 과세운동인 'ATTAC' 등이 각국의 금융 정책 결정, 극빈국에 대한 선진자본국들의 태도변화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아웃사이더'의 공허한 외침이 아닌 시대적 흐름을 주도하는 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국제금융체제 개편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미국, 유럽, 아시아 3자의 각축전이 격화될수록 이들 '주변의 목소리'가 내는 울림폭은 커지게될 전망이다.
지난 3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경제신문 주최로 열린 '제5회 국제교류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국제금융질서 개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간 국제금융에 소극적 방어자세로 일관해 오던 것과 비교해 볼 때 극명한 시대적 변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 이날 회의에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 이광요 싱가포르 전총리, 고무라 일본 외상 등 아시아 주요국 전현직 지도자들이 참석했다.여기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채권국과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며 "국제금융체제 개편 논의에서 위기 당사자인 동아시아 국가들이 제외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간 국제사회에서 'IMF 모범생'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IMF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 국가 경제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온 한국 금융권의 '수장'이 이같은 발언을 하리라곤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
이 위원장은 "지역내 통화간 경쟁적 평가절하와 보호무역을 막고 투기자본을 공동규제하기 위한 정책적 협조가 필요하다"며 "아시아 채권시장 및 신용평가기관 등을 신설하는 등 구체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 아시아 지도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같은 발언은 그간 대구라운드가 워크숍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IMF 추종'만으로는 경제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깨달은 한국정부가 '노선'을 변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하고 있다.미국의 독주와 아시아권의 한 목소리에 대해 유럽연합(EU)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국제금융체제 개편을 위해 노력하는 EU를 지지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냈다. 시라크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아시아국가들이 또다른 태풍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투기자본을 규제할 규칙들을 준비 중인 EU를 지지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모든 결정사항에 신흥국가들을 참석시키고, 적절한 시기에 주요국가 정상들이 참석하는 확대정상회담을 열겠다"고 제안했다.
이런 입장들은 실제로 지난 18~20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G7회의에 일부 반영돼 △극빈국의 외채 700여억 달러 탕감 △국제투기자본의 자금운영 상황 감시 △24개국이 참여하는 IMF잠정위원회를 IMF위원회로 전환 △G7을 포함한 주요 국가 모임인 G34 회의를 IMF 공식협의체로 정착하는 등 새로운 결정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대구라운드 관계자는 "국제금융체제 개편을 미국과 유럽에 맡겨둔다면 다음 세기 국제금융질서 역시 채권국에만 유리한 형태를 띨 것"이라며 "한국은 동아시아 각국과 협력, 이같은 개편 노력에 동참해야 하며 대구라운드를 비롯한 시민운동이 이같은 정부의 노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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