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석제·신이현 중편소설

젊은 이야기꾼들의 중편 소설을 읽는 재미는 남다르다. 손에 두툼하게 잡히는 장편소설과 달리 100쪽을 약간 넘어서는 분량이 일단 부담없다. 또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나가는 감각이 그렇고, 현실과 상상 사이를 경쾌하게 넘나드는 다양한 빛깔의 묘사가 화려하기까지 하다. 독특한 문체미학으로 독자들을 흡인하는 힘은 이들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미덕이다.

문학잡지 '작가정신'이 소설의 향기, 고향의 의미를 담아 시리즈로 펴내는 '소설향' 작품선으로 나란히 출간된 성석제씨의 중편 '호랑이를 봤다'와 신이현씨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도 이런류의 작품이다.

'호랑이를 봤다'는 41개의 끊어지는 에피소드 형태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답잖은 소설가와 9남매를 둔 어느 아버지, 오리회사 공장장, 염소치는 사람에게 바가지를 쓴 월급쟁이, 부도난 남편덕에 부도를 면한 부인 등 여러 인물군상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특유의 농담과 풍자로 속고 속이는 세상,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세상살이를 한꺼풀씩 벗겨내고 들추어낸다. 보통사람들의 돌고 도는 인생유전이 마치 우화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에 담긴 농담같은 이야기들은 견딜 수 없는 현실적 존재의 무거움조차 그 무게를 덜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일탈된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다. 청춘 성장소설의 외양을 갖추고 있는 이 소설은 '숨어있기 좋은 방' '갈매기 호텔' 등 이전 소설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단란주점에 나가는 여고생 '모영'이 주인공. 작가는 평범한 한 소녀가 술을 마시고 매춘행위까지 해야하는 환멸스러운 어른의 세계로 빠져드는 과정을 우울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는 가정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현실이 잉태한 삶의 무거움에 대해 얘기한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상반된 세계를 떠돌며 서서히 죽어가는 인간의 굴레는 무거운 현실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탈주하려는 본능적인 청춘의 욕망을 불러온다. 이 소설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는 주인공의 독백처럼 영혼을 옥죄는 현실에서 영원한 자유를 꿈꾸는 약하디 약한 청춘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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