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지역민들이 일상에서 어느 정도 문화를 향수하고, 지역문화에 대해 얼마만큼의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는지, 또 그런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짚어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다가오는 세기에 문화가 뒤처지면 '선진국 대접받기'는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화의 현주소, 지역문화의 환경을 밀레니엄과 연결시켜 보면 우리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
대구·경북의 문화인프라, 지역민들의 문화 마인드를 점수로 환산해본다면 과연 몇 점이나 될까? 3대 도시의 위상에 걸맞는 점수가 될지 의문이다. 아쉽게도 각 지역의 문화지수를 연구분석한 통계자료가 아직 없어 비교하기 어렵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임학순 책임연구원이 전국 230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지난 96년에 조사한 '지역문화복지지수 측정결과에 대한 논의' 보고서를 토대로 유추해 짐작해보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우수한 문화복지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춘천시, 충북 괴산군, 서울 종로구로 나타났다. 문화재정 수준에 있어서는 대구 중구와 군포시, 강원 양구군이 가장 높았다. 또 공연시설, 영화관, 전시시설, 공공도서관 등 문화시설을 기초로 '문화인프라 지수'(문화 환경과 문화기반구조에 대한 지수)를 산출한 결과 시(市)가운데 춘천시가 0.61로 가장 높았고 강릉(0.56), 안동(0.51), 제주(0.50)시의 순이었다. 구(區)단위에서는 서울 종로구가 0.70으로 가장 높았고 광주 동구(0.42), 대구 중구(0.41)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지수가 절대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문화시설이 밀집돼 있는 도심지의 지수가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 삼성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세계 도시 경쟁력 비교'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시는 문화여가시설에 대한 전반적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30개 도시중 도시경쟁력 수준이 최하위(30위)인 대구시는 '삶의 질' 부문에서 전반적으로 크게 뒤떨어져 있다. 문화여가시설이 국내 도시와 비교해도 낮은 편이고, 시설의 질적 수준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대 도시대비 공연장수는 21%(25위)이고 박물관수는 5.7%(26위), 도서관 장서수는 8.6%(25위)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동안 우리는 기분이 내키면 '문화'를 들먹여 왔다. 비오면 우산 받쳐쓰듯 하다가 햇빛이 나면 그 고마움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나중에 허둥지둥 다시 찾는 꼴이었다. 고가의 그림이나 고전음악에만 문화가 있고, 눈물 찍어내는 TV드라마나 뽕짝에는 문화가 없다고 치부해 왔다. 이런 현실에서 '문화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방식'이라는 어느 외국인의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역설적으로 그동안 우리에게 문화는 실생활과는 별개의 '특별한 것'이었다. 문화발전이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문화를 창출해 내며 다듬고 질을 높여 즐기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왔다는 증거다. 한편 80년대 중반이후 주부,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뭔가 하나라도 배워 직접 해보겠다는 열의가 커지면서 문화강좌나 교양강좌가 붐비고, 길게 줄을 서더라도 '쉬리'는 보는 문화적 태도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비춰볼 때 지역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무엇일까. 우선 공연장·갤러리·박물관·도서관·소극장이나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거리 등 문화시설의 부족을 손꼽을 수 있다. 외국의 추세처럼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과 '전문공간'이 전무한 실정이다. 또 대구·경북 지역문화와 문화현장에는 '쾌적함'이 결여돼 있다. 편리하고 아늑한 시설, 문화적 분위기 등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의미다. 대구의 각 공연장이나 도서관, 갤러리 어디를 둘러봐도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다. 문화를 즐기는 주체인 관객은 항상 뒷전이다. 어디에도 관객과 청중을 배려하는 구석이 없다. 이 때문에 지역의 문화공간은 공연이나 전시회를 한번 둘러보고, 그냥 돌아나오는 공간에 불과하다. 총체적 문화무질서와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문화적 분위기에 감동되고 교양에 대한 욕구를 느낄 수 있을까?
그러면 21세기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먼저 주민들이 가까이서 보다 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 문화친화적인 도시개발정책 추진과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문화 재정 확충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시설 건립에 정부와 지자체의 투자가 확대돼야 하고 민간자본 유치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건전한 문화를 진작시키는 '문화 운동'도 중요하다. 70년대부터 '도시 어메너티(Amenity) 운동'을 전개해온 일본의 도시들이 좋은 본보기다. 어메너티란 어떤 장소·건물·환경 등이 기분에 맞고 매력있는 것을 뜻한다. 관청이나 소비공간을 축으로하는 천박한 상업주의형 도시가 아니라 예술공연장·미술관·도서관·공원·체육관 등 생활문화공간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바꿔나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문화시설을 생활권과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복합화'를 의미한다. 공연장과 전시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극장, 스포츠시설, 복지시설 등이 사무실과 호텔, 식당가, 쇼핑센터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도시. 문화도시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점들이 구체화되고 눈에 보일때 가능한 것이다.
'문화 경쟁력의 시대 21세기'를 준비하는 일본의 경우나 '문화란 정부(지자체) 모든 부처의 활동영역이자 입체적 정책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21세기 문화전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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