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88학번이다. 11년전, 국정교과서에서 갓 헤어난 내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대구교육대학이었다. 원한 미래가 아니었기에 나의 내면은 철저히 기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의식과 사유가 철저히 결여된 나에게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은 결코 다가오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상황은 고등학교때 보다 더 악화되어 갔고, 그렇게 지극히 수동적인 난 책의 세계와 자연스레 조우할 수 있었다. 그 세계는 내가 속한 어떤 현실보다 더 웅장했고, 때론 아름다웠으며, 비극적이기까지 했다.
난 차츰 퇴폐적 유미주의란 마약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절망적이고 염세적인 인생관에 몰두하며 어딘가에 있을 나만의 비상구를 꿈꿨다. 그때 나타난 것이 문학이었다. 재빨리, 비뚤어진 세계관과 비대해진 머리를 방패삼아 그 길위로 뛰어들었다. 한편으로는 우습고 무모해 보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잠시, 난 그 시절을 되돌아 본다. 더없이 가난하였지만 나에게 나눔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던 벗, 상철이와 영희와 현숙이…. 그 시절의 내 불우함이 왠지 지금에 와서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단지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 하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 시절에 느꼈던 절망이 지금보다 더 과장되고 절실했으며, 비록 미천하나마 내가 선택한 세계와 희망에 더 순수하게 매달렸기 때문일게다. 세상은 내가 그리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이 달라져 버렸고, 또한 '동물원'의 잘된 노래처럼 아주 빨리 변해간다.
뉴 밀레니엄, 디지털로 포장되어진 딱딱한 정보의 세계가 우리의 눈 앞에 홍수처럼 펼쳐져 있다. 이 놀라운 속도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퇴폐적 유미주의라든가, 문학을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한낱 유약한 감상주의의 일부분으로 비하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신적인 것들은 한껏 초라해진 몰골로 그 꼬리마저 감추고, 물질적인 것들은 보란듯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세상을 삼켜나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마지막 비상구로 선택한 문학이란 것도 그 신성한 가치가 제거되고 감동의 습기마저 봉쇄되어 결국 산산이 부서져 버릴 것이다. 아, 난 지금 문득, 그렇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설 그 포악스런 바람의 광기를 느낀다. 아니 그 바람의 건조함에 눈물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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