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여성시대-정치의 여성화(1)최고지도자

시대가 여성을 부른다. 흔히들 21세기 정보화사회는 '여성의 시대'라고들 한다. 왜? 섬세한 감성과 창의력을 존중하는 정보화사회는 과거 산업사회에서 여성을 구속하던 여러 제약들을 구시대의 유물로 퇴출시키고, 여성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세계각국이 여성 인력의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21세기 여성시대-세계의 여성, 한국의 여성'의 전망과 과제를 짚어 본다.

〈편집자 주〉

정치의 여성화 ① 여성 대통령과 총리 봇물

"1945년 이후 선거에 의해 각국의 총리와 대통령을 역임했거나 현직에 있는 세계의 최고 여성지도자는 모두 몇명이나 될까요"

대부분 10명 미만이라고 여기겠지만 정답은 놀랍게도 40명에 가깝다

. 현실적인 남성정치의 대안으로서 요람을 흔드는 대신 사회 구조(시스템)를 흔드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7년 임기의 아일랜드 대통령직을 훌륭히 수행했고 지금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으로 활약하고 있는 메리 로빈슨. 가톨릭이 지배하는 보수적인 아일랜드 문화 풍토에서 '당선확률 1%'라는 불가능을 넘어서 '여자 대통령'이라는 '기적'을 일궜다. 도덕성과 개혁, 섬세함이 무기인 메리 로빈슨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의원시절 작업했던 '여성을 위한 동등임금법'(1991)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루었고, 아일랜드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영국을 공식 방문하여 갈등 대신 화합무드를 엮어갔다. 임기 내내 집없는 사람들, 지방단체, 국외 이민자, 북아일랜드 방문, 소말리아 기아 돌보기 등을 통해 아일랜드를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개혁 국가로 부각시켰다. '젊은 아일랜드'를 꿈꾼 로빈슨은 국민 93%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가운데 아름다운 퇴임을 실천, 전세계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정치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메리 로빈슨에 이어 세계정치의 여성화 바람에 또다른 족적을 남긴 사람은 노르웨이의 브룬틀란트 전 총리(현 WHO 사무총장). 세차례나 총리를 역임한 브룬틀란트는 '환경친화적인 발전'이라는 신조어를 쓰며 경제발전과 지구환경 회복을 연결시켜 호평받았고, 오늘날 전세계 환경회의의 기초를 마련했다.

남녀 평등을 부르짖으며 총리 재임시 각료 19명중 9명을 여성장관으로 임명한 로빈슨의 퇴임시 경제성장률은 5%, 인플레이션은 1.3%라는 탁월한 성과를 남겼다. 지난 5월에는 대통령 미망인이던 미레야 모스코스가 파나마의 첫 여성대통령에 당선됐고, 스위스의 독신여성 노조지도자인 루트 드라이푸스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 취임은 여성의 집단적 승리"라면서 새로운 여성정치 시대를 예고했다.

라트비아에서는 100명의 국회의원중 53명이 민주적으로 지지하여 비케 프라이베르가(61)를 첫 여성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개가를 올렸고, 보스니아 헬체고비나의 여성대통령 빌리아나는 부정부패와 부도덕한 정치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민족주의자였다.

아시아에서는 유가족 정치·가문정치가 여권신장과 정치의 여성화를 촉진시키는 새로운 바람으로 정착되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서는 2일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민주투쟁당 당수)가 대통령 티켓을 거의 거머쥐었다.

이밖에도 산디니스타 내전을 종식시킨 니카라과의 평화의 여신 비올레타 샤모로 전 대통령, 프랑스의 첫 여성수상 에디트 크레송, 스리랑카를 이끄는 반다여사(본명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현 총리)와 그딸 쿠마라퉁가(현 스리랑카 대통령), 이슬람 독재에 맞선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 가난·문맹에 맞서 싸운 방글라데시 첫 여자 수상 베굼 칼레다 지아 등도 간디·골다메이어·대처 못지않게 20세기를 장식한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다.

대통령·수상 뿐만 아니라 의회의 여성화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참여와 정계진출이 늘어나면서 정치문화의 여성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데 미국 정치문화가 여성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참여. 재계·정계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정책수립 과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일부 주에서는 여성의원 수가 40%대를 육박하고 있다. 워싱턴주 여성의원은 하원 98명 중 37명, 상원 49명 중 23명으로 총 40.85%를 차지하고 있는데 위기감을 느낀 남성 상원의원들이 '마지막 남자 클럽'을 결성, '남권보호'운동을 펼칠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여성기업인·배우·작가들이 남성중심적 정치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윈(WIN)-윈(WIN)'이라는 단체가 조직됐다. '윈윈'은 여성이 먼저 깨끗한 정치를 펴 재계와 유착된 기존 정치풍토를 바꾸려는 운동으로 각계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의원이 한명도 없는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18개국에 이른다. IPU자료에 의하면 한국여성의 의회진출비율은 119개국 가운데 94위. 전반적인 여성의 사회진출 지표는 한국이 94개국 가운데 73위로 저조하고(UNDP), 해방이후 역대 여성국회 의원은 60명에 그친다.

UNDP자료에 따르면 행정고위직과 관리직여성의 세계 평균은 14.1%. 개도국은 10%, 선진국은 27.4%인데 반해 한국은 4.2%로 정치의 여성화 속도가 가장 늦은 편이다.

실제 모 월간지가 한국에서 여성대통령이 등장할 시기를 설문조사한 결과 대부분 10~20년, 심지어 5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응답했는가 하면, 여대통령감에 대해서는 전재희(50) 전 광명시장, 박근혜(47) 의원 등을 거명하는 선에서 그쳤다.

'역사의 종언'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미 조지 메이슨대)교수는 "지난 수백년 동안 국제정치는 점진적으로 여성화되어 왔으며, 그 결과는 후기산업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보았다. 여성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더 평화로울 것이라는 후쿠야마의 주장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하버드대 정치학과 하베이 맨스필드 교수도 "정치문화의 여성화를 통해 남성들이 중시하는 용기의 미덕대신 보다 유연한 자유의 미덕시대가 올 것"이라는 견해를 보탰다.

여성정치학자 이범준씨는 "21세기 여성의 정치참여는 기존정치의 질적 변화를 수반, 깨끗하고 도덕적인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정치학과 윤용희교수는 "전반적으로 사회가 민주화·선진화되면 소외된 계층, 소외된 사람들의 역할이 늘어나며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정치의 여성화 바람도 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제도가 안정되고, 여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정치참여가 충분히 이루어진 연후라야 여성대통령이 탄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양보다 질을 중시하며, 생명중심으로 나아갈 21세기에 여성의 정치참여는 보다 급속하게 퍼지지 않을까.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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