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중산층과 서민들의 허무

주가지수 1000시대가 열렸다고 감격.환호하는 보도사진을 보는 중산층과 서민들의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다. 일부 중하위층의 무리한 투자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증시와 멀리 떨어져앉은 대부분의 중산층과 서민들은 솔직히 말해 허무감을 느낄 뿐이다. 남이 돈번다고 배가 아파서가 아니다. IMF체제이후 실직.감봉.도산으로 가정붕괴.노숙.적자가계 등의 고통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중산층과 서민들에겐 그들의 환호작약이 엄청난 무력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소득보다 빚이 자꾸만 늘어나는 현실에선 투자든 투기든 돈으로 돈버는 방법은 꿈에도 생각하기 어렵다. 거기다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었다는 정부발표는 요란한데 아직 직장구하기는 쉽지않고 살림살이는 날로 쪼들리기만 하는 것은 개인적 무능에 대한 자괴감만 깊게 한다. 그럴뿐 아니라 해외여행객이 공항을 북새통으로 만들었다거나 고급 아파트, 고급 옷, 고급 음식점의 호황 소식은 살맛을 잃게 한다.

--주가 천시대의 절망

금융연구원의 1/4분기 도시근로자 소득분석자료에 따르면 소득계층을 10단계로 나누었을 때 상위8단계이상(전체의 30%)은 2.4% 소득이 늘어난 반면 중산층(4~7단계)은 3.8%, 저소득층(1~3단계)은 3.1%나 각각 소득이 줄었다. 상위층의 소득이 증가하는 동안 전체의 70%나 되는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이 감소했던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소득 상위 30% 계층의 소득은 97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하위 30%는 9.3%, 중위 40%는 4.2%씩 각각 소득이 줄어 IMF이후 중하위계층의 소득은 계속 감소한 것이다. 소득파악률이 50%도 안된다는 고소득자영업자의 경우까지 합친다해도 이같은 경향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난해의 환란(換亂)속에서도 고소득층은 수입이 줄지않았고 올들어 정부경기부양책의 결실도 그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하위계층은 부채와 고통만 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노.사.정 등 모든 분야의 국민들이 고통을 분담토록 하겠다던 현정부의 약속과는 정면으로 빗나간 결과라 하겠다. 아울러 빈부격차의 심화로 사회불안을 증폭시키는 부정적 요인까지 낳고있다.

--고통분담약속 말뿐

이로인해 건강한 민주주의의 바탕이 된다는 중산층은 붕괴되고 그 두께가 엷어지고 있음은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정부 통계로는 중산층가구수 비중이 97년의 68.5%에서 98년엔 65.7%로, 감소해 80년대중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평균중산층비율 71.6%에 비해 5.9%포인트나 낮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음인지 지난 3월 실업대책을 수립.추진한데 이어 중산층과 서민 생활안정대책을 발표한 것은 그런대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실업대책이 실업의 구조만 왜곡시켰을 뿐 별로 효과가 없었듯이 중산층.서민 대책도 요란한 홍보만큼 실효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정부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다소나마 자금지원이나 갑근세감면을 받게될 수혜자에겐 없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중산층 대책의 허구

이번 중산층.서민 대책은 1조1천억원의 경기부양 및 생활보호 차원의 지원과 1조4천억원규모의 갑근세감면이 혜택의 골자다. 불발로 끝날 것 같기는 하나 이번에 드러난 삼성차처리과정의 삼성생명상장에 따른 재벌그룹의 잇속챙기기와 환란속에서도 진행된 재벌들의 경제력집중에 비춰보면 그같은 대책은 정책의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나마 이러한 성격의 중하위계층 지원은 결과적으로 재정인플레이션을 초래해 이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고 갑근세를 감면해준다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소득계층에 더 큰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더욱이 지난해 정부가 간접세위주로 조세정책을 편 결과 고소득층의 세부담은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저소득층 세부담은 97년보다 약 100% 늘어났고 중산층은 15~20% 늘어난 것은 이번 조세감면혜택이 미봉책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같이 형평에 어긋나는 조세정책이 근본적으로 시정되지않는 한 중산층.서민들은 선거선심에 웃고 우는 처량한 신세를 면치못할 것 같다. 금융종합과세.직접세 위주의 세제개혁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시혜적 대책들은 결국 고소득층을 위한 눈가림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위기극복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이른바 실적 장세의 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보는 중산층.서민들에겐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맨 고통분담의 과실이 그림속의 열매에 지나지 않은 허망감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홍종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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