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쟁점리뷰-세계화의 덫

세계경제가 범지구적으로 통합되는 '세계화'과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신자유주의'의 골자는 '시장은 좋은 것이고, 국가의 개입은 나쁘다'라는 것이다.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이 쓴 '세계화의 덫(강수돌옮김)'에 나오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부터 서구의 자유주의 정부들은 국가에 의한 감독보다는 탈규제화, 무역과 자본 이동의 자유화, 공공기업의 민영화 등을 경제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시장 옹호론자 중심의 정권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등과 같은 국제기구에 의해 차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들은 결국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위한 싸움에 동원되었고, 이 싸움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 싸움의 영역은 항공수송, 정보통신, 은행, 보험, 건설,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 등에서 마침내는 인간 노동력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없다. 한마디로, 지구 위에 존재하는 그 어느것, 어느 누구도 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이라는 냉혹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시장 신봉주의에 기초한 미국적 모델을 선전한다. 그러나 그런 미국 사회에서 점점 심화되고 있는 부의 편중과 빈부격차 등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어두운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유럽이나 일본,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사회는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양분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된 진보란 보통 사람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이 지구상의 약 80%의 사람들에게 해당되게 되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피해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부나 정치가들을 상대로 항의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부나 정치가들은 뭔가 할 수 있는 역량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들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물론, 생태계를 보호하는 일이나 언론의 강력한 힘을 규제하는 일, 국제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일 등을 재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만일 모든 나라의 정부가 허구한 날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만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미래 생존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보다 진지한 자세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모든 정치가들은 자신의 무능력만을 드러낼 뿐이고, 국가는 민주적인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세계화의 덫'을 쓴 두 저자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는 '20대 80의 사회', 다시 말해 20%는 유복해지고 80%는 불행해지는 '5분의 1 사회'가 올 것이라고 학자들의 토론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맹목적 효율성 경쟁과 임금 인하를 기초로 진행되는 범지구적 경쟁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불합리성만 만들어낼 뿐이다. 그 결과 이제는 저 아래쪽에서 정말로 극심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만 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중산층으로 통해오던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잃고 불쌍한 하류층으로 떨어질까봐 더 많은 두려움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매우 큰 잠재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은 가난 그 자체라기 보다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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