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채업자가 몰고 간 죽음

' 철 모르는 일곱살 아들조차 요즘 눈치만 보고있어 능력 없는 애비 눈에서는 피눈물이 쏟아집니다'

11일 새벽 5시30분 쯤 대구시 남구 봉덕동 앞산 고산골 정상 부근에서는 전직 개인택시 기사 김모(39)씨가 나무에 목을 맨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씨가 남긴 유서와 평소 절친한 후배 이모씨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8월 간질환 악화로 택시 영업을 못하게 되자, 택시를 팔아 마련한 전재산(4천만원)을 평소 알고지내던 사채업자에게 빌려줬다. 매월 4.5%(180만원)를 이자로 지급하겠다는 약속에 현혹됐기 때문. 김씨는 1년 정도 통원 치료를 받고 건강이 회복되면 자그마한 가게라도 차릴 심산이었다. 또 사채업자들이 자신들의 채권 회수에 ' 철저' 하다는 것을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는 어렵지 않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4개월 쯤 지난 올해 초부터 약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자꾸 이자 지급을 늦추던 사채업자는 지난 2월엔 아예 돈을 주지 않았다. 생계비 마련도 어렵게 된 김씨가 ' 원금이라도 돌려달라' 고 애원했지만 사채업자는 '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거냐' 며 발뺌했다. 사채업자는 또 ' 중국에 있는 친구에게 돈을 보냈으니 사업이 성공하면 돈을 받아 주겠다' 는 믿을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가 하면 그랜저, BMW 등 최고급차량을 바꿔타고 다니며 김씨의 애를 태웠다.

생활고로 병원치료까지 중단한 김씨는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채소행상을 했으나 악화된 건강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고 최근 사채업자가 처음 보는 남자를 내세워 ' 채무변제를 일임했다' 며 책임을 떠넘기자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했다.김씨는 유서에 ' 무력한 남편과 함께 살아온 처와 아들에게 너무나 안쓰럽다. 내가 없어지는 것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면 멀리서나마 조금은 위로가 될 것' 이라고 썼다. 죽음의 순간, 김씨가 마지막으로 떠올렸을 아들 경식(7· 가명)군은 아버지의 관이 병원을 떠나던 12일 아침, 통곡하는 어머니 주변을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한 표정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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