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의 카지가와병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만찬이 있었는데 식당주인이 실수로 일행의 옷에 물을 조금 엎질렀다. 그러자 주인이 수건으로 닦아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꿇어앉아 몇번씩이나 절을 하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어디 그뿐인가?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는 큰 길까지 따라나와 사과의 선물과 함께 마음속으로 우러나는 절까지 하였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히로시마를 다시 오게 되면 반드시 이 식당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친절'은 우리말 사전에'남을 대하는 태도가 정성스럽고 정다움'이라고 설명돼 있다. 이렇게 보면 그 식당주인의 친절은 그야말로 사전적 의미에 가장 근접했다 하겠다. 몹시 정성스러웠고 넘쳐나는 정다움이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 친절한 사람을 다시 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비스업체에서는 특히 친절이 강조된다. 고객유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각 직장에서는 친절교육이 한창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친절하게 대하고 싶으나 표정이 굳어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로부터 불친절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도대체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인들은 이동과 교역이 삶의 주축을 이룬다. 이같은 삶의 방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웃음'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그 사람에게 자신이 적의가 없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악수 역시 이같은 동지의식을 느끼기 위해 고안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정착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자신을 나타낼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 과정에서 무표정은 우리에게 익숙해졌고, 유교의 엄숙주의가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경상도 지역은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 마치 화를 낸 것 같은 표정으로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의 생활패턴은 바뀌었다. 빈번한 이사, 직업이동, 그로인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것들의 연속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던진다는 것은 자신을 이 험난한 세상에서 지켜나가는 방법중의 하나가 된다. 그것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나에게 커다란 선물을 줄지도 모르는 그 아름다운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곽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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