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은 예쁘고 멋지게 보이는데, 설계가 잘 된 거예요?" 건축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갓 들어간 딸애의 느닷없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 중에는 예쁜 사람도 있고 멋진 사람도 있듯이 건축을 사람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다. 가끔 건축디자인이란 사람을 디자인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무심코 한 대답이었다.
사실 건축물은 하나의 인간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몸 속에 심장과 위·폐·간 등의 기관이 있어 생명을 유지하고, 손과 팔 다리를 갖고 있어 자유롭다. 그리고 머리에는 두뇌, 얼굴에는 눈과 코·입·귀가 있어서 마음과 표정을 다하여 말을 하고, 노래하기도 하듯이 모든 건축물에도 나름대로 부분들이 모여 인간의 그러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몸에는 피를 순환시키는 심장과 혈관이 있듯이 건물에는 보일러와 난방 배관이 있다. 인체의 신경조직은 각부의 기능을 통제하는데, 건축물에서는 전기배선이 그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는 음식을 섭취하고 소화시켜 배설하는 기관이 있는데, 급수배관과 배수배관을 갖고 있는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인체의 골격은 건축물에서 구조체이며, 피부는 건축물에서 외장마감이다. 사람은 숨을 쉬면서 살아가듯이 건축은 창과 문 등의 개구부에 의해 숨을 쉬어야 한다. 이처럼 건축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의 독특한 표정이 있고 개성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 우리 인간은 인체기능을 모두 갖추어 생활할 수 있도록 부모님을 통해서 태어났지만, 얼굴 모습이나 성격은 단 한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이 모두가 다르게 하느님이 디자인한 창조물이다. 건축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모든 구조와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내외부의 공간형태는 사람의 얼굴이나 성격이 모두 다른 것 처럼 특유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형태로 디자인된다. 사람은 하느님이 디자인한 것이고 건축은 사람이 디자인한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발레리는 건축을 인간에 비유하여 첫째 '침묵의 건축', 둘째 '말하는 건축', 셋째 '노래하는 건축'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건축은 건축가의 디자인에 의해 우리에게 어떻게 얘기하고 노래하는가 하는 예술적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건축은 이러한 것의 창조과정이 핵심이 되는 공간예술이다.
그러나 건축을 회화나 조각과 구분짓는 뚜렷한 특성은 건축은 인간을 포함하는 3차원적인 표현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회화는 2차원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조각은 3차원으로 작용하여 인간은 그 외부에서 떨어져 예술을 감상하는 다른 하나의 객체로서만 존재한다. 그렇지만, 건축은 인간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부가 파내어진 거대한 조각과 같은 것이다. 꽉 차있는 것이 아닌, 비어 있는 공간에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건축과 더불어 생활을 영위하면서 건축은 완성되는 것이며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건축공간은 이미 건축이 아닌 것이다.
건축디자인은 하느님이 디자인한 인간이 인간을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건축가는 인간과 인간 삶을 알아야 하며, 조물주의 권능과 우주의 마음을 깨닫고 읽을 수 있도록 겸허해져야 할 것 같다.
김 영 태〈건축가·영남대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