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산외대 권덕영교수 주장

현재 일본 존경각문고(尊經閣文庫)에는 국내 학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천지서상지'(天地瑞祥志)라는 서기 666년에 편찬된 아주 오래된 천문지리서가 소장돼 있다.

지금까지 일본학계에서는 이 책이 뚜렷한 근거없이 당나라의 살수진(薩守眞)이라는 사람이 왕명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8,9세기 중국에 파견됐던 일본 사신들에 의해 일본에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원래 20권 중 9권만 남아있는 이 '천지서상지'가 신라 문무왕대에 활약했던 설수진(薛守眞)이라는 학자가 쓴 것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이 국내 고대사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책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국내 문헌 중에는 가장 오래된'대승기신론소'를 비롯한 원효(617∼686)의 저술과 거의 동시대가 되며 한국 고대 천문서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 된다.

부산외국어대 권덕영 교수는 최근 발간된 이화여대 사학과 신형식 교수의 화갑을 기념한 논총집인 백산학보 제52호에 발표한 '천지서상지 편찬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는 글에서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권 교수는 이 논문에서 일본학자들은 이 책이 살수진이라는 당나라 사람이 쓴것이라는 데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있으나 추적 결과 이는 당나라 작품이 아니라 신라인이 쓴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것이 신라인 작품이라는 근거로 권 교수는 △당나라 작품이라는 근거가 아무데도 없고 △이 책 서문에서 저자가 이미 중국에서는 폐지된 지 3개월이나 지난 연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백제가 멸망된 뒤 신라 문무왕과 당나라가 세운 백제 꼭두각시 왕인 부여 융과의 사이에 맺은 맹서를 기록한 이른바 '취리산맹문'이 아주 자세히 등장하고 있고 △무엇보다 '삼국사기'에 설수진이라는 사람이 문무왕대에 활약한 문장가로 등장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삼국사기'의 설수진이 곧 '천지서상지' 저자라는 살수진과 같은 인물이라는 점은 발음이 거의 똑같은 데다 실제 삼국시대 때는 살(薩)과 설(薛)이라는 한자를 서로 바꿔 쓴 사례가 여럿 있다는 데서 더욱 확연해진다는 것.

따라서 이 책 서문에서 살수진에게 편찬을 명했다는 '대왕폐하'는 바로 문무왕임이 확실하다고 권 교수는 덧붙였다.

한편 '천지서상지'라는 책에 대해 한국 고대천문학의 최고 권위자로 통하는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과 나일성 연세대 명예교수는 모두 "처음 듣는 책"이라면서"국내 학계의 면밀한 연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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