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치

여권은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내각제 개헌문제는 적어도 연내는 하지않기로 굳힌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과의 약속도 8월까지 결말을 내겠다던 언급도 거짓말이 된다.

문제는 내각제를 하느냐 않느냐에 있지 않고 이렇게 대국민 약속을 함부로 버려도 되느냐하는 신뢰와 도덕성에 관한 것이다. 아직 국민회의쪽에서는 공식언급이 없으나 자민련쪽에서는 김종필총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결정할 것이라는 간접화법으로 연내 내각제개헌포기의사를 비쳤다. 그리고 내각제 개헌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국민회의는 현상황의 유지를 원할 것이고 한나라당은 원래 대통령중심제 선호의 정당인데다 일부 내각제 선호의원들도 지금처럼 여권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선뜻 내각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내각제개헌이라는 대국민 약속을 밀실합의 형태로 진행시켜서는 안된다. 무슨 이유로 연기 했으며 또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했으면 대국민 사과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우습게 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공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라고 지적한 말씀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여권은 알아야 한다. 이렇게 대국민약속 위반을 식은 죽 먹기로 해서야 되겠는가. 설사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가 발생했다면 그 절차를 민주적 형식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각제 개헌은 권력구조를 바꾸는 문제이다. 이는 충분히 국민적 의견수렴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처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원집정부제로 하거나 순수내각제로 하려는 것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동기부터 잘못된 것이다. 국민회의는 현상유지가 최선이고 자민련을 겁떼기야 대통령제든 간에 운영을 사실상 이원집정제로 해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면 된다는 잇속논리로 나간다면 정치개혁은 그야말로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대당 협상'이라든지 '개헌연기 합의 부인'등 연막으로 일관하지 말고 떳떳하게 국민에게 밝힐 것은 밝히고 그야말로 당이라는 공식채널을 통해 국민적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것이다. 내각제개헌이라는 국가적 명제를 보스형 정치로 결정 내려서는 더욱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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