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여름 방학이다. 어려웠던 50년대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학생들의 방학 생활은 당시보다 많이 나은 편이다. 크건 작건 간에 방학 동안의 체험은 평생 소중한 것으로 남는다. 요즈음 선생님들은 방학 중 학생들에게 전시회, 음악회, 박물관 등을 다녀오라는 숙제 내주는 일이 흔하다. 50년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갖게 하는 일이다. 체험을 통한 교육이 결여되어 있는 우리의 교육 환경을 생각한다면 권장할 만한 좋은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방학중이 아닌 경우에도 가끔 만나는 일이지만 음악회의 휴게 시간이나 음악회가 끝나고 나올 무렵에 로비에서 중학교 정도의 학생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은 한두 명 내게 다가와 혹시 음악회를 보고 난 티켓이나 프로그램을 자기에게 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음악회나 전시회를 자주 가는 사람이면 이런 학생들에게 무심코 티켓과 프로그램을 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 학생들은 학교 숙제를 위해 티켓과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전시회나 음악회를 본 감상문을 가짜로 꾸며 몇 줄 첨부해서 티켓과 프로그램을 숙제로 제출할 것이다. 어머니가 함께 왔을 경우 어머니가 그 숙제를 조금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부모의 사랑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그 학생은 방학 숙제를 하면서 거짓말하는 것을 한번 더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학교라는 공식적 기관을 무사히 통과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게 한다는 것을 학기말 성적표를 받을 때에 확인할 것이다. 인간의 뇌리에 뿌리 깊게 기억되는 가치관은 부모와 함께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얻어온 프로그램으로 숙제를 제출하는 일은 거짓말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어머니로부터 전수 받는 일에 다름 아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구성원들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윤리와 모든 종교는 이를 강조한다. 거짓말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혹적인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더 강조하는 것이다. 형법도 불이익을 막기 위해 자신일 경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피의자가 가족일 경우 법정 증언을 거부할 수 있게 한 것은 침묵이라는 거짓말을 최소한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법은 그 외의 모든 거짓말을 위증으로 처리한다.
생각을 해 보라. 음악회를 가지 못해 숙제를 못 내어 그에 해당하는 점수를 못 받았을 망정, 참석하지 않은 음악회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 아닌가? 어떻게 거짓말에 부모가 공모할 수 있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성적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왜 학생들은 진실보다 성적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부모들마저 여기에 가담하게 되었는가를 그들의 편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종합 평가 기록을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교육부는 그 부작용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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