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창원 도피일기장

2년 6개월여 도피기간 동안 신창원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순천 은신처에서 발견된 신창원의 일기장은 진녹색 표지로 100여장 가운데 40여장이 빽빽히 채워져 있었다. 차분한 글씨체로 쓰인 일기장에는 사형을 각오한 듯한 회한과 함께 사형수들에 대한 연민, 법에 대한 불만,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도피생활 동안 심적 갈등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일기 주요 부분 발췌내용.

▲자신의 범죄에 대한 후회 범죄는 순간적이다. 범죄를 하고 있는 순간에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하고 있고 그 행위가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느끼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알고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거운 처벌이 내려져도 달게 받는다.

▲사형을 각오한 듯한 참회 사형수들이 한결같이 하던 말이 무엇인 줄 아는가. 나에게 백번, 천번 사형이 집행되어도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이렇게 죄인으로 살다 죄인으로 세상을 떠난다는게 너무나 아쉽다. 나에게 세상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정말 참된 인생을 한 번 살고 싶다는 것이다.

▲법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 과연 법이 만인에게 평등한가. 군사정권 이전부터 법의 형평성은 사라졌고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아직도 치외법권은 상상외로 많고 권력을 쥔 자가 범죄행위를 했을 때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하기란 쉽지 않고 처벌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사형수들의 죄가 큰가, 아니면 전두환, 노태우, 그 추종자들, 김현철·김영삼 당시 권력 수뇌부들의 죄가 더 무거운가.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있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과연 그들이 진심으로 속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성회비와 급식비가 몇개월 밀려 있었다. 학급에서 나만 내지 못하니 창피하기도 했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돈을 가져오라고 하시고 집에서는 돈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니 정말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집을 나가 2, 3일을 밖에서 지냈고 밥을 먹을 수 없어 과일과 과자를 훔쳐먹곤 했다.

6학년 봄, 집안에 있던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 가출을 했다. 10여일을 지내다 보니 돈이 다 떨어지고 집에 들어가기도 싫어서 전남 곡성에 있는 중국집에서 5개월쯤 일을 했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동생이 생각나 조금 모은 돈을 동생에게 부치면서 아버지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말고 용돈으로 쓰라고 했는데 아버지에게 말해버렸다.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혼날 것을 두려워했는데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집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金炳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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