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DNA감식 범인 검거 '족집게'

경찰이 한 용의자를 미행하고 있다. 증거 부족으로 함부로 체포할 수도 없는 상황.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용의자는 신호 대기 중 무심코 길에 침을 뱉았다. 이를 본 경찰관은 용의자가 떠나자마자 준비해 둔 종이로 침을 닦아냈다. 며칠 뒤 경찰은 용의자를 10여차례에 걸친 절도 및 강간 혐의로 체포했다. 범인이 뱉은 침과 피해자로부터 채취한 정액의 DNA가 일치했던 것. 실제로 올해초 미국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있었던 일이다.

최근 캐나다 토론토에선 지난 86년 발생한 10대 소녀 육상선수 살해사건의 범인이 사건 발생 13년만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DNA 감식 결과 피살자에게서 발견된 정액의 DNA와 범인의 것이 일치했기 때문. 한편 미국 오클라호마에서는 성폭행 및 살인죄로 12년간 복역한 교사와 야구선수가 DNA 감식 결과 뒤늦게 무죄를 입증받기도 했다.

과학잡지 '파퓰러 사이언스' 최근호는 앞으로 5년내에 휴대형 유전자 감식장비가 개발돼 사건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범행 현장에 남아 있는 핏자국, 정액 및 타액 흔적, 머리카락, 피부 조각 등을 신용카드 크기만한 감식기에 넣는 즉시 범인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미 법무부는 종전 수주씩 걸리는 유전자 감식작업을 현장에서 단 몇분 만에 처리, 범인 체포 지연에 따른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미국내 성폭력 및 살인사건 중 50%가 동일범에 의한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범죄자들로부터 유전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 해야 한다. 지난해 FBI(미연방수사국)는 '국립DNA색인시스템'이라 불리는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한 바 있다. 영국도 지난 95년 DNA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이래 그간 용의자 1만6천여명의 DNA 일치여부를 확인, 범죄 해결에 활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검찰청이 지난 92년부터 살인, 강간 등 각종 강력범의 유전자를 수집하는 '유전자 정보은행' 설치를 위한 입법을 추진 중이나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의 관할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업체인 나노진(Nanogene)이 개발 중인 휴대형 DNA 감식장비는 전체 DNA 중에서 STR이라 불리는 특정 부위를 이용해 각각의 유전자를 구별해 내는 것. STR은 개인마다 특정한 형태를 띠고 있어 범인 색출에는 안성맞춤. STR은 13개의 서로 다른 종류가 있으며 이들 조합을 통해 지구상 어떤 사람도 구별해 낼 수 있다.그러나 장비가 보급되더라도 수사 현장에서 휴대형 DNA 감식이 활약하려면 몇가지 보완할 점이 남아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범행 현장에서 시료 채취시 오염 여부. 만약 경찰관의 머리카락이나 피부 조각이 묻어나면 감식 결과는 완전히 딴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번 시료를 채취할 때마다 다른 집게와 장갑을 사용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화된 DNA 자료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현재 미국 수사당국이 보유한 DNA 샘플은 약 14만개. FBI는 40만개의 DNA 샘플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과거에 채취한 DNA 샘플 20만개 역시 새로 개발된 STR 기법에 맞춰 재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 확보 작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죄선고자의 DNA만 채취할 것인지 단순 용의자의 DNA를 모두 채취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예를 들어 애리조나주는 성범죄자만 혈액 채취를 허용하고 있는 반면 버지니아주나 앨라배마주는 모든 범죄자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게다가 루이지애나주는 9월부터 체포되는 모든 용의자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도록 할 방침이다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 미국 정부는 휴대형 DNA 감식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미 법무부는 NASA(미항공우주국)와 함께 우주 탐사에 쓰이는 최첨단 장비를 응용해 휴대형 감식 장비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른바 '근지구 소행성 궤도위성(NEAR)'에 쓰이는 첨단 센서를 이용해 범죄현장에서의 시료 채취와 분석이 보다 빨리 이뤄지도록 한다는 것. NEAR위성은 2000년 2월쯤 소행성 에로스로 날아간 뒤 첨단 장비를 이용, 물리적 특성과 같은 데이터를 지구의 통제소로 전송하게 된다.

이를 응용해 수사관들은 범죄현장에 간이 데이터 센서 및 전송장비를 설치, 모든 자료를 범죄통제 연구소로 보낸다는 것. 첨단 휴대용 카메라로 현장 모습을 실시간 3차원 영상으로 보내는 한편 X-선 투사장치 등을 동원해 핏자국, 탄흔, 마약 등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한다. 통제소는 전송된 자료를 분석해 추가 증거물 수집이나 사건 현장 보존 여부 등을 지시하게 된다. 1차 현장 수사에서 얻어진 자료를 통해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면 이후 전문가들이 현장 자료를 다시 정밀 분석해 확고한 물증을 얻어낸다.

金秀用 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