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문화파일-'용가리 신드롬'의 허실

이 시점에서 '용가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영화(영상)에 이렇게 열광했던 적이 있었던가.

신지식인 1호 심형래씨의 '용가리'는 1년반 가까이 '질풍'처럼 달려왔다. 득점 전광판처럼 수치를 더해가는 해외판매 계약 액수, 외국은행의 투자 제의,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와의 계약 가능성.... '용가리'가 뿜어내는 '장밋빛 환상'은 뜨끈뜨끈했다.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것"이라는 질타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공감한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었다. PC통신에선 '용가리'의 분발을 격려하는 글이 쇄도했고, '1호 신지식인'은 전국을 돌며 강연회도 가졌다.

뚜껑 열어보니 아쉬움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지금, 입을 열기가 민망하다. 질풍처럼 달려온 것 치곤 너무 허탈하기 때문일까.

사실 '용가리'는 완성도에 있어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다. 시나리오나 연기 등 기본적인 요소들도 어린이용 '우뢰매'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내세우던 CG(컴퓨터그래픽)의 수준도 놀라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용가리 마니아'들은 "그래도 잘 만들었다"고 옹호하지만 '그래도'라는 말 자체가 이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용가리'는 120억원이 투입된 영화다. 우리 영화 제작 사상 최고액, 특A급이다. '쉬리'도 24억원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거액을 투자한 만큼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용가리'의 심형래씨를 비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특수효과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다. 괴수영화 특수촬영에 대한 노하우, 기자재와 인력을 갖춘 곳도 '영구 아트 무비'만한 곳이 없다. 해외 영화 수출때문에 그 만큼 열정적으로 뛰어다닌 영화인도 없다. 문제는 '용가리'의 '거품'이다. 지난 1년간 심형래씨는 우상이 됐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여과없이 보도했다. 정부는 공익광고까지 찍어 방송했다.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공익광고 찍는데 마다 할 제작자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분별력있는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같은 '비정상적인' 관심도는 영화 자체보다 '수출역군 심형래'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용가리'에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과 '고질라'가 오버랩되면서, 국민들은 그가 내세우는 구속력없는 외국 영화사와의 판매계약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영상 대국'의 꿈을 키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다. PC통신에는 "안 그래도 잘 크는 심형래를 정부와 언론이 나서 '영구'로 만들었다"는 비난의 글들도 올라 있다. 냄비 끓듯 호들갑을 떤 것은 미디어와 정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방향타도 없는 '거품 만들기 '였다.

그래서 특수효과의 개가라는 '자위'마저 초라해지고, '용가리'가 가졌던 장점들도 퇴색시켜 버렸다. 우리나라 디지털 SF영화의 첫 발을 내디딘 '용가리'에 우리는 너무나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일까.

김중기(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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