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되면 중.후진국에서 국민국가가 사라질 지 모른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가 사라진 자리엔 선진국 출신의 초국적 거대기업들이 들어와 '시장'과 '수익성'의 미명 아래 정부와 국민을 지배할 것이다"
정부 없이 외국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만 지난 6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이후 이같은 '지구 종말론'적인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당시 G7 정상은 △극빈국 외채 710억달러 탕감 △IMF 기능 강화 △투기자본 규제 등 몇가지 합의문을 내놓았다. 합의문 중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이달부터 다자간 통상회의를 재개하고 오는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릴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차기 무역자유화교섭을 본격 출범시킨다고 결의한 내용.이에 대해 대구라운드 한국위원회 이찬근(인천대 교수)사무총장은 최근 내놓은 내부 보고서를 통해 'MAI(다자간투자협상)를 부활시키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MAI는 지난 95년 미국 주도로 OECD 각료이사회 자리를 빌려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당초 지난해 4월까지 기본협정을 타결키로 했던 것. 그러나 일부 국가와 전세계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로 좌절된 바 있다.
그렇다면 MAI가 전세계적으로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줄기차게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MAI가 타결될 경우 투기자본을 포함한 초국적 기업이 각국 정부의 간섭과 규제에 구속받지않고 전세계를 상대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으며, 사업을 옮길 수 있는 무제한적인 자유와 권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최대의 이익을 누리는 나라는 초국적 기업이 가장 많은 미국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누려야 할 영업의 자유를 반대하는 악의적 평가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MAI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이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주식.채권.외환 등 금융자산은 물론 문화.교육.환경 등 인간 기본권과 국가 전통을 포함하는 정신적 가치까지 '투자'의 개념에 포함시켜 국가간 자유로운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 이는 결국 국민 기본권과 국가 주권을 위협하는 역효과를 낳게 마련이다. 지난해 프랑스는 MAI가 통과될 경우 프랑스 영화시장을 미국 할리우드 공세 앞에 무장해제해야 한다는 위험성 때문에 이에 반대했다.
MAI의 최대 독소조항 중 하나는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히거나 입힐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기업이 국가 및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강화, 국가가 노동.환경법 등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조치나 법안을 자주적으로 입안하거나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국.공영기업에 대해 초국적 자본보다 더 나은 '특혜'를 줄 수 없도록 해 공익을 위한 국가의 재정 및 투자 정책이 무력화된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부담이 대폭 증가하는 동시에 국가의 국민보호 기능은 완전히 무기력해진다.
이찬근 사무총장은 "지난 G7 정상회담에서 미국 등 선진국은 자국 이익이 우선되는 방향으로 세계 경제체제를 재편하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며 "대구라운드 한국위원회는 오는 10월 국제대회와 올해 말 시애틀 WTO 각료회의, 내년 3월 오키나와 G8회담, 내년 서울 ASSEM 회의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안과 운동방법을 개발,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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