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선생, 당신은 지옥을 믿으시오?" "그… 글쎄요…"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요, 얼마나 많은 지옥이 있는지…. 나는 그 입구를 발견하고, 문을 열어 젖혔지요.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소. 도망치려고 했지만 꿈속에서 나를 깨우던 그 공포가 나를 계속 잡아당기고 있었소" '마리오 조르다노의 '지하의 집'에서'
공포의 원조는 문학. 공포예술 장르에서 '공포문학'은 영화나 연극·음악·미술 등 타 장르에 비해 훨씬 시기적으로도 앞서고, 폭도 넓다. 모든 공포예술 장르의 '밑그림'이 되어온 공포문학은 인간의 삶과 함께 해왔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부터 할머니 무릎을 베개삼아 듣던 옛날 귀신이야기나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호러·스릴러·판타지 소설까지 그 활자속에는 '공포'와 '괴담', '추리'의 요소가 양념처럼 녹아 있다. 비록 영상매체에 비해 충격의 정도는 덜 할지 모르지만 무더운 여름날, 대나무 자리와 공포소설 한 권이면 삼복더위도 싹 가실 수 있어 여름엔 공포소설이 제 격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여름 서점가는 늘상 공포소설이 점령해 왔다. 서구에서는 공포소설이 로맨스나 모험소설을 밀어낸 지 오래다. 호러 베스트셀러 목록을 별도로 만들어 낼 만큼 인기절정이다. 세기말을 맞아 90년 중반이후부터는 '공포중독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생활속에 스며든 공포의 그림자는 날로 그 음영이 짙어지고 있다.
올 여름 국내 서점가도 예외가 아니다. 숱한 공포소설들이 서가를 메우고 있다. '링'의 작가 스즈키 고지의 단편 공포소설집 '어두컴컴한 물밑에서'(씨앤씨미디어)를 비롯 최근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스티븐 킹의 '자루속의 뼈'(대산), 의학스릴러의 대부 로빈 쿡의 신작 'O-157'(열림원), 딘 쿤츠의 '사이코'(한뜻) 등 장안의 지가를 높이고 있는 거장들의 작품이 빽빽하다. 또 중세 서구인들의 밤의 불안과 공포를 추적한 장 베르동의 '중세의 밤'(이학사)이나 크리스테바의 첫 추리소설인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민음사)도 한 몫하고 있다.
또 20세기초 영미 여성작가들의 소설 중 유령이나 불가해한 현상을 다룬 '밤의 여신 닉스의 초대'시리즈인 '달팽이와 장갑' '7월의 유령' '위팅턴의 고양이'(책세상)와 19, 20세기 유럽·미국의 단편 괴기소설을 묶은 '괴담-공포에 관한 11가지 짧은 이야기'(글세상)도 눈에 뛴다. '양들의 침묵'을 쓴 작가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 '한니발'(창해)도 이달말쯤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양들의 침묵' 후속편인 '한니발'은 지난 6월초 미국에서 첫 출간돼 발매 1주일만에 초판 130만부가 동이 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편 요즘 항간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 미니시리즈를 활자화한 김은서씨의 '소설 고스트1'(은행나무)이나 신경정신과 의사 전홍진씨의 메디컬소설 '오이디푸스'(다른세상) 등 우리 작가들의 공포소설도 눈에 띈다. 그러나 국내 문학계에서 공포소설의 저변은 그리 넓지 않다. 순수문학보다 가볍게 취급되는 문단의 분위기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 관심있는 젊은 작가들이 책보다는 주로 PC통신을 통해 동호인을 대상으로 유통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공포문학 창작강좌'를 수두룩하게 개설해 놓은 외국과는 대조적이다.
공포문학은 흔히 문학의 룰을 깬다. 독자의 상상력과 신경을 극도로 예민하게 고양시킨 후 툭 떨어뜨리는 기법이나 전혀 상상치 못한 엉뚱한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는 줄거리 전개 등 다른 픽션의 차분한 구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즉 파격이 미덕인 셈이다. 이런 요소가 사람들을 공포소설에 바짝 매달리게 만드는 이유인지 모른다. 하지만 보다 더 본질적인 요소이자 해답은 'Horror is fun'이다. 공포는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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