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에 묻혀 사는 도시인. 그들은 누구나 한번쯤 탈출을 꿈꾼다. 물론 대상은 자연이다. 그 중심에 숲이 있다.
물이 생수란 이름으로 팔리듯 이제 숲의 푸른색 향기도 예외는 아니다. 뿌리를 땅에 박은 나무가 가공되지 않은채 '상품'이 된 것이다.
출발점은 몇년전부터 문을 열기 시작한 '휴양림'. 하지만 이미 각광받는 사업이 됐다. 현재 경북 지역에만 10곳의 휴양림이 있고 내년이면 5곳이 개장한다. 우리가 숲을 가꾼 역사라야 40여년. 60, 70년대에는 나무를 심기에 바빴고 그 후에야 수종 선택과 병충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조림의 역사에 비하면 '휴양림'은 경제 성장 못잖은 발전을 이룬 셈. 하지만 이른 성장이 부작용을 낳듯 취재진이 봉화에서부터 살펴본 '숲'은 혼란스러웠다. 도시의 편리함이 곳곳에서 자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수하계곡 휴양림
"산에 있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산을 가꾸는 만큼 덕을 입는거죠"
영양군 수비면 수하계곡에서 만난 김영호(61)씨. 그는 자신의 임야 40여만평에 휴양림을 만들었다. 목재업으로 평생을 살았다는 김씨가 휴양림 사업을 시작 한 것은 지난 93년. "수십년간 공을 들인 나무들입니다. 여기서 나온 맑은 공기를 나눌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일을 시작 했습니다"
수령 70, 80년의 소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찬 김씨의 휴양림은 맑기로 소문난 수하 계곡을 끼고 있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 하지만 지난해 준공검사까지 마쳤지만 개장을 늦추고 있다.
"이용객들이 편한 걸 찾는데 산막까지 도로가 없어요. 결국 문을 열어봤자 관리비도 나오지 않을게 뻔해 망설이고 있습니다"
평생을 숲에서 살았고 시키지 않아도 전국을 뛰어다니며 솔잎 혹파리 방제에 힘을 쏟았다는 김씨. 그는 사람이 속세의 먼지를 털어 버린채 자연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청옥산 휴양림
봉화군 석포면 청옥산 휴양림은 김씨처럼 자연을 고집하다 편리함을 따른 곳.
지난 90년 개장한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원시림 지역. 관리 주체가 산림청인 만큼 모든 면이 자연 친화적으로 설계됐다. 개장 당시엔 전기조차 없었을 정도. 벽난로로 난방을 하고 형광등을 대신해 호롱불을 사용했단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TV와 전기 온돌이 설치되고 매점까지 들어 선 것.
"수익성 때문에 시설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산림청 관계자의 설명.
곳곳에 도로가 뚫렸지만 오지란 이름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 곳 청송. 해발 550m의 삼자현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휴양림 입구가 나타난다. 오지란 말그대로 청송의 나무들은 자태가 있고 빽빽하게 숲을 이룬다.
"청송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맑은 공기 아니겠습니까. 산림욕을 하기엔 최적지죠겉모습에서 산사람 냄새가 나는 임두안(54) 관리소장은 휴양림 자랑에 거침이 없었다. 수목 대부분이 침엽수에다 수령도 족히 30, 40년은 넘었고 숙소인 산막도 숲 속에 쌓여 있다. 통나무집을 보호하기 위해 취사 도구도 화장실도 없다.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휴양림'의 외형을 갖추고 있는 셈. 하지만 여기서도 '도시의 때'가 묻어 났다.
걷는 것 보다 차가 우선인 요즘 사람을 위해 휴양림 경계를 따라 나무를 베내고 개나리가 심겨진 임도가 놓여 있다. 올 겨울엔 눈 썰매장까지 들어설 예정이란다. 그래도 이곳까지는 천연림의 넉넉함이 있다.
◆토함산 휴양림
"97년 개장 한 이후 2만3천여명이 다녀갔고 연간 수입은 9천만원쯤 됩니다"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석굴암 기슭에 자리잡은 토함산 자연 휴양림.관리를 맡고 있는 권영만(경주 시청)씨는 "투자에 비하면 수입은 적지만 7·8월에는 예약이 넘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했다.
37만여평에 이르는 휴양림 규모나 18억이 들었다는 산막과 놀이 시설이 사람을 끌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그 넓은 숲을 채우는 나무의 대부분은 수령 20년 미만. 그것도 산림욕장으로 상품성을 지닌다는 침엽수는 찾기가 어렵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통나무집.
문을 열면 도시로 들어선다. 하얀색 벽지로 둘러쌓인 벽에 가지런히 놓인 싱크대와 옷장. 여관과 다를바 없다.
◆장곡 휴양림
토함산을 벗어나 찾은 군위군 고로면 장곡은 빗나간 '휴양림'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숲이 없었다. 청송과 영천을 잇는 지방도에서 1.5㎞쯤 뻗은 흙먼지 비포장길을 들어가면 마치 공사중인 아파트 단지의 놀이 공원을 연상케하는 시설들을 만난다.흙더미위에 덩그라니 놓여진 통나무집과 심은지 5년이 안된 유목들.
관리소측은 "휴양림 공사를 하면서 산림욕에 적당치 않은 잡목을 베어내고 나무를 새로 심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통이나 계곡 등 그나마 입지 조건이 맞는 곳이어서 휴양림을 개장하게 됐다는 것이 추가 설명.
군청에서 수익 사업이라는 의욕만 내세우다 숲 없는 산림욕장을 만든 꼴. 그래도 16억원을 쏟아 부었다.
숲 1㏊가 연간 내뿜는 산소는 12톤. 우리나라 전체 숲이 갖는 가치를 돈으로 따지면 35조를 넘어선다고 한다. 자연이 돈이 되는 시대. 하지만 하나의 전제가 있다.도시의 묵은 때를 벗어버릴 때 자연은 가치를 지닌다. 영양에서 만난 김영호씨. 그는 평생을 숲에서 보내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고 했다. "사람의 기준으로 다가서면 이미 자연은 자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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