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합데스크-위를 덜고 아래를 더해주라

'신이 떠나간 자리에 시인이 그 직분을/대신한다고 그 누가 말했는가/누가 이 땅의 시인을 두고 온갖 미사여구를/늘어놓으면서 고상한 찬사를 하는가/…〈중략〉…/글로벌 리서치에 의뢰해 전 회원을 대상으로/조사한 바에 따르면 문인들의/월평균 원고료 수입이 십육만구천원 이하로/나타났다고 하더이다/…〈중략〉…아 이 땅의 삶의 형평성이여/삼사십 년의 문학 경력이여/문화관광부에 가서 농성을 할까/법무부에 가서 시위를 할까'

마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시인 이선관씨의 '전관예우'라는 절규에 가까운 시다. 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우리나라 문인들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자괴감과 비애를 높은 목소리로 토로한 경우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한다.

◈빈곤층 2배이상 늘어

더구나 우리는 지금 '가로등 밑의/노숙이 너무나 아름다운 저 하루살이떼들/얼마나 생이 떳떳하면/불 앞으로 당당히 고개 쳐들고 달려들까/그 앞에서 나는 고개 숙인다'(박숙이씨의 시 '화단에 앉아'에서)는 소시민적 비감과도 마주쳐야만 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곤층의 확대'와 '빈부격차'다. 지난해 계층별 소득 점유율에서 상위 20%는 39.8%로 2.6% 포인트 높아진 반면 하위 20%는 7.4%로 0.9% 포인트 낮아졌다. 빈곤층은 2배 이상 늘어났으며, 생활 수준도 20% 정도 떨어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유층은 오히려 넉넉해지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외환 위기와 그 여파는 빈곤층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고 중산층을 무너뜨리면서 빈부격차를 가속화시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결과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현상이 심각한 지경이다.

'내가 너보다 못산다'는 소외감과 불평등 의식은 날카로워 질수록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신뢰감을 엷게 만든다. 위화감를 심화시키고 적대감을 증폭시켜 정치.경제.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의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미 부유층에 대한 '민심'이 걱정스러운 수준에 이르고, '반 부유층 정서'가 불거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부유층이나 지도층 집의 절도 사건과 병역 비리 사건, 옷 로비 사건 등도 그런 맥락에서 짚어봐야 한다. 신창원 검거 과정에서도 보았듯이 심지어는 도둑에게까지 연민을 느끼는 '가치관의 전도' 현상은 정말 우리를 서글프게 하기도 했다. 더구나 잇단 일련의 사건들은 서민들로 하여금 부유층.지도층의 부도덕성과 불평등을 실감케 하는 역할까지 하지 않았던가.

◈도둑에게까지 연민

최근 또 대우 사태 등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기는 하지만 경기는 차츰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경제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벗어나는 과정에 놓인 것으로도 평가된다.

실제 당초 2% 안팎으로 예상했던 올해의 경제 성장률이 7.5%로 상향조정됐다. 지난해 연초까지 거의 바닥이었던 외환 보유고도 600억 달러를 웃돌고, 산업활동 지표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서민들에겐 여전히 '체감 경기'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좌절감이 증폭되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도 선진국처럼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정상을 찾으려면 부유층이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자신이나 가족보다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솔선해서 실천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나 부유층에게 과연 그런 기대를 해도 좋은 것일까. 아직은 회의적이지만 언젠가는 '요원하다'는 비관을 벗어날 날이 오기는 오는 것일까.

◈서민들 가계부담 줄여야

그런 희망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면 정부는 차선책이라도 찾는 데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만 할 때이다. 소득 재분배 구조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법을 엄정하고 공평하게 집행하는 길을 모색함으로써 계층간의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불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과감하게 차단하고, 서민들의 가계 부담을 줄이는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만 저소득층의 불평등 현상과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거나 줄이는 길이 열릴 것이다.

'주역'에 나오는 '위를 덜고 아래를 더해주라'(損上益下)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 말의 속뜻을 살펴 나아가야 위아래의 통로가 넓고 곧게 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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