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갱의 타히티 기행'번역 출간

"나는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폴리네시아로 가서 영원히 살기로"(폴 고갱. 1894년 10월)

그리고 그는 떠났다. 그림도 그리고, 종려나무 밑을 거닐기도 하면서 낙원에서의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주식중개인의 삶을 내던지고 화가의 길을 택한 고갱. 화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계속되는 경제적 궁핍과 이혼은 그를 원시의 섬을 찾아나서게 만든다. 우연히 본 타히티 섬 안내기는 고갱을 자극한다. 그의 나이 마흔 한살 때의 일이다.

'고갱의 타히티기행'(서해문집 펴냄)에는 오염된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적 건강미를 화폭에 담아낸 고갱의 삶과 예술이 담겨 있다. 타히티어로 '향기로운'이라는 뜻인 '노아 노아'를 원제로한 이 기행은 타히티에서의 생활수기와 마오리족에 구전돼온 고대신화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산문으로 구성돼 있으며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수채화와 목판화가 실려 있다.

광활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의 작고 아름다운 섬 타히티. 온화한 열대기후와 정글, 오염되지 않은 섬. 고갱은 타락하지 않고, 비유럽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원주민들을 주목한다. 원주민들이 들려준 타히티의 전설과 오두막 주변의 풍요로운 열대의 풍경은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2년간의 타히티생활에서 고갱은 많은 대작을 남기지만 당시 유럽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그를 인정해준 고흐와의 짧은 만남도 파탄나고, 타히티로 되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지만 타히티의 어린 아내 테후라도 도망가고 없었다. 고통스런 두번째 타히티 삶에서 도피하려던 고갱은 마지막 기착지 도미니크섬으로 들어간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려는 간절한 바람도 무산된 채 만신창이가 된 그는 1903년 심부름하던 소년만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55세를 일기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고갱이 지옥과도 같은 고독속에서 유럽문명이라는 악과 필사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 때 파리에서는 그의 그림이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반동적인 유럽문명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천재 예술가 고갱의 영혼과 정서가 배어 있는 이 책은 고갱의 자연숭배와 타히티 원주민의 고결한 영혼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다. 세밀하면서도 경쾌한 고갱의 문체는 여백에 삽입된 수채화와 예술혼을 담아낸 목판화와 함께 독자들의 감성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갱을 소재로 했다는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셋 모엄이 쓴 서문도 인상적이다.

1895년 갑작스레 프랑스로 돌아온 고갱은 타히티에서의 생활을 담은 스케치북 형태의 원고와 열 점의 목판화를 책으로 출간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출판사마다 책 내용과 그림이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며 출판을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자비출판하게 된다. 이 때문에 고갱의 원본에는 대부분의 삽화와 특별히 제작한 목판화 10점이 실리지 못한 채 불구상태였다. 현재 루브르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이 작품들은 1951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바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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