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대구엔, 시인이 있다

1996년, 내가 아는한 그 해 겨울 문단은 더없이 암울했었다. 대구의 한 젊은 시인이 자신이 쓴 소설의 음란성으로 인해 구속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 또한 소설 한권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힘들게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몇 만권이 팔리고,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제의가 들어오면 자연스레 판권을 계약해 버리는 것으로 그의 소설은 끝이 났다. 이것이 나의 피부에 와닿은 그 소설의 일생이었다.

차츰 사건은 악화되었고, 파리에서 귀국한 그는 곧바로 구속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문단의 분위기는 그를 변호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를 돕고 싶었다. 그리하여 1997년 겨울, 난 놀랍게도 한 중앙지의 1월1일자 조그만 면(面)을 얻게 되었고, 서슴없이 이렇게 가득 메워 나갔다.

내 존경하는 젊은 시인 한 분에게

영원한 상상력의 자유를, 시(詩)로의 회귀를 , 그리고 다시 한번

(불란서行) 비자를…비자를…비자를….

'신춘문예 당선 소감', 일생에 단 한 번 뿐일 이 소중한 지면에 왜 이따위의 글로 전체를 도배해 버려야만 했는지 지금에 와서도 궁금하다. 하지만 난 마치 어느 국외 망명자의 무표정함, 그 가난함에 이끌리어 거리낌없이 녹슨 계좌속으로 소정의 체류비를 송전하듯, 그 당시 더없이 암울했던 그를 이렇게나마 돕고 싶었다. 그가 나따위의 무명 습작생을 알 리야 있겠는가만은, 이런 하찮은 글따위가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만은, 난 아무래도 좋았다. 난 그렇게 미약하나마 그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1999년… 그래 3년이 지난 지금, 난 제일서적 국내 소설코너에 전시된 그의 신작 '보트 피플'을 넘겨가며 다시 그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본다. 사진에 집착하고 있다는 그는 그 시절의 폭력으로부터 약간은 헤어난 듯해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습작생에 불과한 난 1987년의 그를 존경한다. 진정 1988년에 읽었던 그 시인의 자유와 그 표현방식을 사랑한다. 매일, 11시 7분전이면 난 메이플소프를 닮은 듯한 그의 성스런 '3J',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에 귀기울이며 잠이 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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