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노병이라고 했다. 그들이 사람들의 이 소리를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그저 끝없이 사라지지 않으면 된다. 그들에게는 전장의 오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버틸줄도 알고, 버티면 그 속에 공존과 공생의 길이 있음 또한 잘 알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견제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들만의 독특한 헤게모니를 유지할 줄도 안다. 그것 뿐이다.
그들에게는 후계자도 없고 그들에게는 지역감정이 오히려 복주머니다. 상이한 가치와 상이한 삶의 양식들이 오늘 용케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런 맞아 떨어짐에 그들 자신들이 어쩌면 더 놀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 일어난다. 늙은 오뚝이도 어쨌거나 오뚝이는 오뚝이 인것을.
한 세기에 걸쳐 중원땅을 누빈 전국시대의 하(夏), 은(殷), 주(周) 패망사에는 세 여인들이 있었다. 말희와 달기와 포사가 그들이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를 탄생시킨 말희는 하왕조의 마지막 걸임금에게 비단 찢어지는 소리를 한없이 듣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비단. 그 비단 찢어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킬때 백성들은 어떠했을까. 이를 보다못한 현신 관용봉이 한 나라의 형편은 그 나라의 음악을 들으면 안다고 말하고 "치세의 음은 편안하여 즐겁고 그 정치는 평화롭지만 난세의 음은 노기를 띠어 그 정치는 어그러질 뿐이다"고 간했지만 소용이 있을리 없었다.
은의 주왕 또한 달기에 빠져 왕을 조금만 헐뜯어도 천자 모독죄로 그 유명한 포락의 형벌에 처했다. 시뻘겋게 핀 숯불위에 기름칠한 구리기둥을 걸쳐놓고 죄인을 그 기둥위로 걷게하는 형벌이다. 결국 그도 달기와 함께 불속으로 뛰어드는 운명을 맞았지만 사가들은 이를 역사의 심판이라고 적었다. 주나라의 12대 유왕 또한 웃지않는 포사를 웃기기위해 무진 애를 쓴다. 결국 수천, 수만명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실수하는 모습이 보고싶다는 포사의 원을 들어준 끝에 그 포사의 웃음 한번 보고는 자신의 종말을 맞이한다.
모든 성취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세 여인들의 성취에서 우리는 성취의 끝이 어떤것인가를 볼수있다. 결국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었다.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기 마련인데도 임금의 귀들은 익지않고 여인들의 말을 들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돌아온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의 사리는 늘 그렇다. 그런데도 일시적인 인기에 눈이 가려 방심하거나 시답잖은 여론조사에 앞이 가려 지지율만 턱없이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애시당초 인기나 지지율이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나 풍선 같은것. 풍선을 방탄조끼로 생각할수 없듯이 인기를 만리장성 쯤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 실은 그게 문제다. 아무리 착각이 자유라고는 하지만.
대검을 압수수색하고 지사부부를 구속하고 신창원을 잡고 신지식인을 뽑고 젊은 피를 수혈하고 연내 개헌을 포기했지만 도대체 지금 우리에게 달라진것은 무엇인가. 검찰의 위상이 서고 우리의 치안이 안정되고 당면한 실업 고용 교육 세금 환경 등에 어떤 변화라도 생겼는가. 아니다. 그럴수록 분당 창당 신당 합당에다 플러스알파로 묘한 구도만 화폭을 어지럽힐 뿐인 오늘의 정국이다.
몽골제국이 중국지배를 본격화할 무렵 칭기즈칸은 거란족 출신의 명재상 야율초재(耶律楚材)를 직접 발탁한다. 그는 "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기 보다는 한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편이 낫고 한가지 새것을 더하기 보다는 한가지 헌것을 덜하는 편이 낫다"는 말을 남긴다.
정치는 현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직시해야 한다고 한다. 너무 직시한 탓일까. 해로운 일을 제거하기 보다는 이로운 일만 찾아다니고 헌것을 덜하기 보다는 새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새것만을 좋아하는 신사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동아속 섞는 속은 밭임자도 모른다더니 그 말이 칼집에 칼 꽂히듯 들어맞는 시절이다. 시끄러울 때는 빈 구석이 생기는 법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 시끄러운 소음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빈 구석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구석이 비어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없다. 왜? 선거가 끝났으면 이긴자는 선거에서 통치로 옮겨가는것이 순리인데도 선거는 여전히 계속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선거때만 자유로울뿐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는 루소의 말을 실행할 셈이듯.
올벼 논에 참새떼가 아무리 많아도 때기 한 방이면 풍비박산 나듯이 그런 때기 한 방 칠 유권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아예 자존심을 접어 두었으면 더 말 할 나위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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