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숲속 지방에서 있었던 실화 한가지.
소에게 풀을 먹이던 한 여자가 아름드리 나무를 베던 남자들을 발견했다.
"휘익! 휘익!"
그녀의 휘파람 소리에 순식간에 동네 여자들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숲은 우리의 어머니예요. 나물과 과일을 얻고, 약초와 버섯도 캐고…. 나무에 손대지 마세요"
여인들의 용감한 행동에 놀란 벌목공들은 도끼와 톱을 팽개치고 물러갔고, 정부는 10년간 벌목 금지령을 내렸다.
또다른 히말라야의 산악지방. 300여 그루의 물푸레나무 벌목권을 얻은 남자들이 트럭 두대에 무장경찰을 앞세우고 나타나자 히말라야 여자들은 아이를 감싸안듯이 나무를 껴안았다.
"나무를 베려면 먼저 나를 베라"
죽기를 각오한 여자들 때문에 벌목하러온 남자들은 빈손으로 하산했다. 이른바 히말라야 산간에 사는 무지렁이 인도 여성들이 펼친 '칩코(chipko)운동'의 시작이다.
인도 델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숭실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옥순씨는 '껴안는다'는 뜻을 지닌 칩코 운동은 개발 미명 아래 날로 파괴되는 귀중한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들이 발벗고 나선 환경 보호 운동의 하나라고 소개한다.한낱 나무를 위해 목숨을 버릴 필요까지 있느냐고 여길 수 있지만 히말라야 여성들이 전개한 나무 껴안기 운동은 이곳 주민들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걸린 절박한 생태운동이었다.
생태학은 모르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방식을 지키려는 인도 여성들의 칩코 운동은 나무보호에서 산과 수자원 보호까지 행동반경을 넓혔으며, 아시아 최대 규모로 24개 마을의 운명을 바꾸게 될 히말라야 테리 댐공사를 '완전 파괴의 상징'이라며 반대의 깃발을 높이고 있다.
인간도 보호하고 자연도 보호하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나무를 베려면 나부터 쓰러뜨려라'며 환경운동을 펴고 있는 여성은 또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태평양 연안. 레드우드(삼나무) 숲이 하늘을 찌를 듯한 이곳에 사는 '인간 나비' 줄리아 힐(24). 인간 버터플라이 힐은 퍼시픽 림버 목재회사의 벌목을 온몸으로 막으며, 97년 12월10일부터 '루나'라는 이름의 삼나무(20층 건물 높이, 수령 1000년)에서 살고 있다.
어느날 레드우드 숲에 갔다가 너무 아름다운 숲과 벌목으로 발가벗겨진 대지를 동시에 목격한 충격과 감동에 엉엉 울어버린 힐은 이 숲이 환경 보존 지역으로 설정돼 영구히 지켜져야한다는 신념으로 수상(樹上)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힐은 60m 높이의 나무에서 빗물을 받아 몸을 씻고 환경단체가 보내주는 식량을 밧줄로 끌어올려 끼니를 때운다. 소지품은 손으로 돌려 발전하는 라디오와 태양열 휴대폰 등 몇가지. 겨울에는 바지를 여러 겹 껴입고 이불을 8채씩 뒤집어 쓰고 추위를 견딘다. 엘니뇨가 몰고온 최악의 폭풍도 견뎌냈고, 목재 회사가 열흘 동안 나무 주위를 둘러싸고 식량 공급을 중단하고 헬리콥터로 연기를 뿜어대는 위협에도 굴하지않고 인간이 태어난다는 근본을 이루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개발도 중요하고 일자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숲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나면 회사는 이익을 챙겨 이곳을 뜨고, 그것으로 끝장이다. 소중한 숲은 잃고 나중에 땅을 쳐도 소용이 없다. 나무를 함부로 베고 자연을 망치는 것은 자연의 조화를 해치는 행위"는 힐이나 히말라야 여성들의 칩코 운동이나 모두 아끼고 사랑하는 본능을 지닌 여성의 잠재력이 인류와 자연을 동시에 해방한다고 믿는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하나.
생태학(ecology)과 페미니즘(feminism)이 합성된 에코-페미니즘은 20세기의 가장 큰 발전을 이룬 여권신장, 남녀평등 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해방과 자연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며, 인간이 인간을 서로 불신하는 가운데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마저도 급속도로 황폐화된 이 죽음의 문명속에서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인간관계 및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재형성하기 위한 새로운 틀이 바로 에코-페미니즘이다.
서강대 환경신학과 문영석교수는 "파괴를 생산으로 이해하고 생명의 재생산을 수동성으로 이해하는 가부장제의 정치적 범주들은 여성과 자연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를 박탈하고 오직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만 취급한다"면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적 태도, 인간의 자연에 지배적 태도가 구시대의 산물인 여성혐오와 생태계 파괴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이진아 연구실장(여성환경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환경오염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피해를 주고, 여성들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남성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익 추구·경쟁·호전성·파괴 등 남성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모성·육아·협동·공생·평화 등과 같은 여성적 가치로 가치관을 전환해야 인간성 회복과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진아씨는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국내 여성들의 환경 마인드는 비교적 높은 편"이라는 여성환경연대 성낙진 사무국장은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여성들의 사회적 경험을 쌓고, 아이디어를 모아서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희생물인 여성과 자연이 결합하여 그들을 동시에 해방시키려는 에코-페미니즘은 누가 그저 주는 것이 아니다.
에코-페미니즘을 성공적인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운동가들이 우선 언론 정보·환경 관련 정보·여성문제에 대해서 알아야하고, 다양한 계층(전업 주부·근로 여성·생산자 여성·소비자 여성)의 여성들이 힘을 모아야한다.
또 여성들부터 자본주의적인 환상 대신 지속가능한 생활패턴을 선택해야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교수는 "자연 파괴와 가부장제 구조를 연결시키고, 여성이 남성보다 자연에 친화성이 강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에코-페미니즘은 매우 매력적이고 고무적이지만 그 전에 여성들의 힘기르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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